[제주섬 문화유산 다시읽기](22·끝)제주어

[제주섬 문화유산 다시읽기](22·끝)제주어
문화유산 설 곳 잃으면 제주말도 허공으로
  • 입력 : 2007. 10.19(금)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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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열린 제46회 탐라문화제 제주어말하기대회 학생부 경연 모습. 언어의 특성상 제주어도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으면 절멸위기에 놓일 수 밖에 없다. /사진=김명선기자 mskim@hallailbo.co.kr

유행처럼 뜨고 있는 제주어 쓰지 않으면 사라져

통일된 표기법 제정·학교 교육 보존노력 절실



제주도문화재인 민속자료로 지정된 방사탑. 방사탑이 있는 곳을 찾았을 때 그 이름에 낯설어하는 마을 노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방사탑을 답, 탑, 거욱대 등으로 불렀다.

제주도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해녀노래. 네젓는 소리, 물질호는 소리 등으로 더 많이 불리는 제주의 대표적 노동요다. 멸치를 뜻하는 제주어인 '멜'을 후리면서(휘둘러서 모는) 부르는 노래는 '멸치 후리는 노래'란 명칭으로 제주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실제 그 노래를 불렀던 사람들은 '멜 후리는 소리'로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섬 문화유산 다시 읽기'란 이름으로 올 한해 20여가지의 문화유산을 찾아나섰다. 문화유산의 중심에 제주어가 있음을 느낀 시간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염원을 달래주던 마을 본향당의 굿판, 제주섬 사람들을 먹여 살린 물을 져날랐던 옹기 제작 현장, 해녀들의 바다밭, 돌담이 한폭의 그림처럼 이어지던 어느 마을의 골목길. 그 모든 공간에 제주어가 아니면 딱 꼬집어 표현못할 것들이 숱했다. 제주어를 이른바 표준어로 옮기는 순간 올레, 구덕, 정당벌립, 허벅, 테우, 오메기술은 그 '맛'을 잃을 것 같다.

제주어가 유행처럼 뜨고 있다. 1년새 제주어는 물을 만난 듯 했다. 지난해 4월, 국립국어연구원과 국립민속박물관이 제주어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공동 추진하겠다며 업무협약을 체결한 게 발단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이곳저곳에서 제주어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최근엔 제주도의회에서 제주어 조례를 만들었다. 이에따라 내년부터 제주도에서는 매년 10월에 제주어 주간을 정하고 제주어 보존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펼치게 된다. 제주어 주간을 정한 것은 제주어가 '귀한 몸'이 되었다는 방증이면서 '약자' 취급을 받는 것일 수 있다. 제주어 주간이라도 정해 '희미한 옛 그림자 같은' 제주어를 붙들어두고 싶은 심정이 전해진다.

절멸 위기의 제주어. 과장은 아닌 듯 싶다. 사투리를 쓸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쓰지 않으면 차츰 사라지기 마련인 언어의 속성상 제주어가 일상화되긴 어렵다. 1995년에 제주도에서 펴낸 제주어사전에 나온 어휘를 이용해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들은 나이 70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닐까.

제주어 조례 제정을 계기로 제주어 보존을 위한 방책을 찾아야 한다. 당장 제주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노인을 대상으로 음성을 기록하는 등의 조사를 벌여야 한다. 제주어에 대한 축적된 연구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제주어사전 증보판을 내는 데도 예산이 예정대로 지원되지 않아 쩔쩔매는 게 제주의 현실이다. 제주도문화재의 명칭을 정할 때 현장의 제주어를 살리려는 노력도 필요해보인다. 문화재명칭을 표준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본래의 뜻이 왜곡될 수도 있어서다. 지정 명칭에다 제주어를 병기하는 등의 방법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강영봉 제주대 교수는 제주어 보존방안과 관련 "지금까지 '제주어사전'에 실려있는 제주어표기법을 따르고 있지만 이것도 20여년전에 몇몇 사람에 의해 작성된 시안에 불과하다. 제주어 표기 통일을 위한 표기법 제정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라고 언급했다. 강 교수는 또 "제주어 육성을 위한 학교교육과 구어체 교재 개발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제주 사투리가 경쟁력이우다" 제주어 활용한 콘텐츠 개발 강화돼야

올해로 46년을 이어온 탐라문화제(옛 한라문화제)에는 제주어 말하기 대회가 있다. '누가 누가 제주 사투리를 잘 구사하나'를 겨루는 행사다. 학생부·일반부가 참가하는데 그 맛이 다르다. 성인들은 평소 말을 하듯 '연기'를 이어가지만, 학생부의 일부 참가자들은 달달 외운 원고를 그저 내뱉는구나란 인상이 든다. 당연한 일이다. 요즘 아이들의 입에 밴 말은 표준어지 제주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제주시 산지천 인근에서 열린 산지천 예술마당 행사에서 공연된 제주도연극협회의 제주어연극 '뺑파 삼다 사랑가'.

제주어 연구자들의 몫 한편에 제주어를 어떻게 일상과 가까운 대상으로 끌어갈 것인가도 고민거리다. 제주어를 활용한 문화콘텐츠, 문화상품 만들기와 맞닿아 있는 문제다.

연극계에서는 제주말 연극제란 이름으로 탐라문화제 기간에 '사투리 연극'을 공연해왔다. 올해 축제 기간에는 제주말 연극제가 사라져 아쉽긴 했지만 지역 연극인들은 제주어를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제주적인 소재를 발굴해온 놀이패 한라산, 민요패 소리왓 같은 단체는 제주어 공연을 늘상 행한다. 제주어로 노래하는 '뚜럼브라더스'란 공연팀도 있다. 제주어가 지역성을 빠르게 알아채게 만드는 '경쟁력'이 된다는 점을 터득하고 '제주마씸'(제주입니다)처럼 제주말을 특산물 공동 브랜드명으로 끌어쓴 사례도 나온다.

하지만 콘텐츠의 다양화는 여전한 과제다. 제주사람끼리 제주어를 배울 뿐,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체험 프로그램은 전무하다. 음식을 맛보듯 제주어를 배우며 또다른 제주를 만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런점에서 최근 걸으며 제주의 속살을 만나는 걷기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중인 제주올레의 시도는 눈에 띈다. 이들은 얼마전 내놓은 홍보물에 제주어 표기법을 따른 제주말 배우기 코너를 짬짬이 뒀다. 말 좀 물으쿠다(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걸어가젠 햄수다(걸어서 가려고 합니다), 어디서 옵디까?(어디서 오셨습니까?), 경허난(그러니까) 등은 걷기 여행을 위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는 제주어다.

최근 제주민속문화의 해를 기념해 열린 '제주어와 제주민속의 변화 그리고 보존' 주제 세미나에 참석한 강정희 한남대 교수는 "제주도에 있는 민속마을을 '제주방언 체험 마을'로 강화해 제주도민이나 관광객들이 그 마을에 들어가면 제주방언으로 의사 소통과 모든 민속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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