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쓰게마씨](9)'돌하르방' 양기훈씨

[제주어 쓰게마씨](9)'돌하르방' 양기훈씨
"돌하르방은 고상떠는 거 어수다"
  • 입력 : 2008. 04.24(목)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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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이 돌하르방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20년 가깝게 제주어로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는 양기훈씨. /사진=강희만기자

제주어로 라디오 진행…지난 연말 방송 4천회

1인 다역 연기 우리사회 희로애락 진솔히 담아



"제주땅에서 쇠질르멍 살아가는 사름덜, 앞이 왁왁 허덴 행게. 아멩 어시 살아도 사름이 사름노릇 허멍 살아야주. 아멩 어시 살아도 정부가 정부노릇 허멍 살아야주."

'하르방'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실상 쇠고기 시장을 미국에 전면개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있던 뒷날이었다.

출근길, 제주MBC 라디오 '돌하르방 어드레 감수광'에 주파수를 맞춰놓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시종 제주어로 꾸짖고, 달래고, 껄껄 웃는 사람이 있다. '돌하르방'이다.

양기훈씨(45)는 1987년부터 '돌하르방'이었다. 통틀어 3~4년쯤 '돌하르방 어드레 감수광'이 방송되지 않았던 시간을 제외하면 프로그램이 생길 때부터 줄곧 한자리를 지켜왔다. '돌하르방 어드레 감수광'은 지난 연말 방송 4천회를 넘어섰다. 이 프로그램을 탄생시킨 고동진(51)PD와 호흡을 맞추며 '돌하르방'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양씨는 졸업 뒤 고향으로 온다. '백수'였던 2년간 섬을 누볐다. 미처 몰랐던 땅의 사연이 들려왔다. 안덕, 표선, 한경 등지에서 밭일을 도와줄 때면 할망들이 그랬다. "아이고 착허다. 누게 아들고?" 관용어처럼 제주의 할망들이 던지는 그말에 가슴이 미어졌다. '돌하르방'을 키운 시간이었다.

3분 가량의 방송 시간동안 그는 1인 다역을 소화한다. 돌하르방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새 춘생이 삼춘, 순댁이 할망이 되어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다. 지금껏 그의 입을 거쳐간 인물만 1백명은 족히 된다. 연기를 배운 적은 없다. 섬땅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가르침'을 줬다.

양씨는 진행자이자 구성작가다. 공공조형물을 제작하고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 작업 등을 하는 그는 공사현장에 머물때가 많다. 시사적인 내용을 다루는 프로그램이라 세상사에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공사장에서 일하다 방송국 가서 논술고사 보듯 원고를 쓴다"는 그다.

20년 가깝게 청취자들과 만난 프로그램인 만큼 애청자들이 많다. '왜 돌하르방이 그 문제를 꼬집지 않느냐'는 항의를 받을 정도로 프로그램에 대한 믿음도 두텁다.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주어 구사 문제다. '난이도'에 따라 방송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청소년이나 '육지'출신 청취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양씨는 원칙을 세웠다. 제주에 산지 4~5년 된 사람들이 대충 알아들어야 하고, 중·고등학생 정도면 무슨 얘길 하는지 이해할 만한 '난이도'를 정해놓았다. 더러 '돌하르방'이 쓰는 제주어가 살갑지 않다는 반응에 대해서는 이런 말을 했다.

"돌하르방은 고상 떨지 않는다. 사람사는 현장에서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만난 사연들을 전하기 때문이다. 진솔하게 우리사회의 희로애락을 표현하기 때문에 지금껏 프로그램이 살아남은 게 아닐까 싶다."

4·3 이후 지금까지 60갑자를 한바퀴 도는 동안 서서히 없어져가는 제주어에 대해서 왜 많은 사람들이 애석해하지 않을까라고 물었던 '돌하르방'. 그는 한 세대가 지난 뒤 호남 출신이든, 영남 출신이든 제주어 하나로 지역사회가 화합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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