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문학의 현장](32)연재를 마치며

[4·3문학의 현장](32)연재를 마치며
제주사람 사는 어딘들 4월이 없으랴
  • 입력 : 2008. 10.03(금)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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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동북측 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4·3희생자 2차 유해발굴 장면. 1949년 군법회의 사형수들이 총살돼 암매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4·3의 사연은 아직도 이 땅 아래 잠들어 있다./사진=김명선기자mskim@hallailbo.co.kr

북촌리서 日 이쿠노까지 문학에 담긴 4·3의 현장 찾아
늘상 눈에 걸리는 바다·오름 등에 60년전 그날 사연
오늘도 고통속 4·3 쓰고 있을 지역 작가에게 응원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의 소나무가 전하는 칼바람을 맞으며 시작된 취재는 추적추적한 가을비가 도심에 내려앉은 일본 도쿄 우에노까지 이어졌다. 현기영의 '순이삼촌'에서 김석범의 '까마귀의 죽음'까지 30회 남짓 24명의 작가가 쓴 4·3문학을 품고 섬 안팎을 발로 디뎠다.

늘 마음이 무거운 여정이었다. 작가들이 시로, 소설로, 희곡으로 녹여낸 4·3이란 이름 앞에서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기껏해야 60년전의 일이다. 오래된 이야기를 새삼 꺼내 무엇하나 싶겠지만 60년전은 먼 과거가 아니다. 아이와 할아버지의 나이차를 생각해보면 60년은 동시대다. 4·3은 그렇게 우리 시대에 일어난 일이고, 섬사람 수만명이 그 때 죽었다. 그래서 '기껏해야 60년전'이라고 썼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4·3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작가라면 이 물음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주의 작가들은 4·3을 떼어놓을 수 없는 숙명을 안고 있는 듯 했다. 창작 과정을 털어놓으면서 눈물을 설핏 비친 작가들도 있었다.

'4·3문학의 현장'에서 만난 작품중 가장 오래된 것은 1957년 일본에서 발표된 김석범(제주출신 부모를 둔)의 '까마귀의 죽음'이다. 가까운 시기의 발표작은 2008년 '제주작가'봄호에 실린 김창집의 연작소설 '섬에서 태어난 죄-산전'이었다. 4·3 현장은 때로 문학이 못다한 말을 들려주기도 했다.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낳은 북촌 너븐숭이는 못보던 건물이 생기고 문학비 설치가 진행되는 등 얼굴이 바뀌고 있었다. 오성찬의 '한 공산주의자를 위하여'의 실제 모델이 된 무장대 조직책 조몽구의 무덤은 성읍공설묘지를 떠나 조용히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박재형 동화 '다랑쉬오름의 슬픈 노래'를 쓰면서 빗속을 헤맨끝에 찾아낸 다랑쉬굴에선 입구를 막아놓은 바람에 안내 문구가 닳은 허름한 빗돌만 보고 발길을 돌렸다.

무장대 사령관이던 이덕구의 사연도 만났다. '4월제'를 쓴 문충성 시인은 소년시절 관덕정 앞에서 이덕구의 시신이 내걸렸던 장면을 또렷이 기억해냈다. 김창집이 쓴 '산전'의 배경이 된 이덕구산전에 올랐을 때에는 그곳의 상징물처럼 놓여있던 솥단지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걸 알았다.

제주국제공항이 처참했던 4·3현장이라는 점은 김수열의 '정뜨르 비행장'을 읽으면서,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을 만나면서 또한번 환기됐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는 순간 '빠지지지직' 환청이 들릴 것만 같다.

성산포도 다르지 않다. 그림같은 성산일출봉을 배경삼은 터진목(강중훈의 '오조리의 노래'와 김석교의 '숨부기꽃'), 서청이 주둔하던 옛 성산교(김석교의 '숨부기꽃'), 4·3에도 바다를 떠나지 못했던 잠수들이 자맥질하는 성산포 우뭇개(한림화의 '한라산의 노을')는 꼼짝없이 그 날을 지켜봤다. 선흘 동백곶(장일홍의 '붉은 섬'), 동광리 큰넓궤(김경훈의 '헛묘'), 위미 앞바다 벌러니(고정국의 '지만 울단 장쿨래기'), 금악리 만벵디 묘역(강덕환의 '만벵디'), 한라산 기슭의 어느 기도원(고시홍의 '도마칼'), 월령리 무명천 할머니 삶터(허영선의 '무명천 할머니')도 삶과 죽음을 오간 공간이다.

김석범 김시종 김길호의 4·3문학을 취재하기 위해 찾은 일본 오사카의 이쿠노, 도쿄의 아라카와에도 4·3이 있다. 이쿠노 조센이치바의 김치가게, 다방 등 시장 골목을 드나드는 재일동포들도 제주처럼 똑같이 '금기의 시대'를 지났다. 그래서 어떤 이는 4·3 체험을 드러내도 되는 세상이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며 아직도 입을 다문다. 그러고보면 제주사람이 사는 어느 곳, 4월을 비켜선 데가 없다.

지난 10개월간 '4·3문학의 현장'을 줄곧 좇았지만 오경훈의 연작 소설 '제주항'처럼 이 지면에 미처 소개하지 못한 작품도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통속에 4·3을 써내고 있을 제주섬 작가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과감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4·3 문학을

북촌 너븐숭이를 다시 찾았다. 10개월새 그 일대는 '비석거리'로 변해있었다. '너븐숭이 4·3위령성지'라고 새긴 큼지막한 돌 옆에 제주도 4·3사업소에서 세운 크고작은 안내판이 두 개 설치됐다. 위령비, '순이삼촌'문학비,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방문 기념 빗돌에다 지난 8월 15일 북촌리 주민들이 쌓아올린 방사탑까지 합치면 가히 돌과 탑의 '성지'다.

정작 기념관은 텅 비어있다. '4·3문학의 현장' 연재를 시작하면서 너븐숭이에 갔던 게 2007년 12월인데 달라진 게 없다. 1년 가깝게 속 빈 건물이다. 소설 '순이삼촌'을 읽고 현장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실망감을 안고 돌아가지 않을까.

▲다시 찾은 조천읍 북촌 너븐숭이 기념관. 완공한지 1년이 되어가지만 주변의 빗돌만 늘어났을 뿐 기념관 내부는 아직도 텅 비어 있다.

4·3문학이 쓰여진 현장은 곳곳에 있다. 4·3의 전국화, 세계화를 말한다면 그것을 구슬처럼 꿰는 일이 필요하다.

문학지도 제작은 한 방법이다. 관덕정, 성산포, 다랑쉬 등 제주의 작가들이 써낸 숱한 4·3 소재 문학의 현장을 담아낼 지도다. 여행객들에게 제주섬의 또다른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4·3문학관 건립, 4·3문학전집 발간 등 4·3문학의 성과를 정리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제주섬에 떼죽음이 있었음을 앞서 알린 게 문학이었지 않나.

하지만 이 시대 작가들에겐 '순이삼촌'이후 30년간 이어진 문학적 성과를 이어갈 책임이 있다. 동어반복을 넘어서 과감한 상상력으로 4·3을 다룬 작품이 나와야 한다.

4·3문학을 연구해온 김동윤 제주대교수는 "4·3소설은 90년대 초반에서 성장이 멈춘 상태"라면서 "무거운 주제지만 대중성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감수성으로 변화된 국면에 맞는 이야기를 써낼 젊은 작가가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이달말 새로운 4·3시집을 펴내는 김경훈 시인은 "'순이삼촌'에 북촌리 학살과 관련있는 중대장 이름도 모른다는 대목이 있는데, 그 말처럼 실제 중대장이 누군지 밝히지 못한 게 현실"이라면서 "각론적이고 구체적인 사건을 캐는 데서 세계적인 4·3문학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이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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