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 현장]섭지코지에서 보낸 하루

[진선희기자의 문화 현장]섭지코지에서 보낸 하루
  • 입력 : 2009. 04.21(화) 00:00
  • 진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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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타다오 등 건물 설계
'거장'의 명성이 위안 될까
제주원풍경이 사라진 공간


순전히 안도 타다오 때문에 떠난 길이었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안도 타다오는 노출 콘크리트 등 환경친화적인 건축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일본의 건축가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이 그곳에 있다는 말을 진작 들었던 터에 동행할 사람이 생기자 기껍게 길을 나섰다. 동행한 이는 얼마전 그가 설계한 일본 작은 섬의 유명 미술관을 다녀오고 적잖이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지난 11일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를 찾았다. 관광객을 위한 마차가 달리는 섭지코지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대규모 해양리조트인 휘닉스아일랜드가 들어선 그곳은 결론부터 말하면 거대한 미술관이다. '세계적'이란 수식어가 붙는 건축가의 공간 곳곳에 인상적인 미술품이 놓여있다.

이 땅을 지키는 수호신이란 뜻을 지녔다는 안도 타다오의 '지니어스로사이'는 그다운 공간이었다. 건물 양쪽에서 쏟아지는 폭포, 지붕이 열린 현무암 복도, 고개들면 시야를 뒤덮는 하늘. 신발을 벗고 전시장을 따라가다보면 국내 유명 미디어아트 작가의 작품과도 마주친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건물은 인간이 자연안에 숨쉬는 존재임을 새삼 일깨운다.

성산일출봉이 바라보이는 언덕위에도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축물이 있다. '글라스하우스'로 이름붙여진 공간엔 파랑갤러리를 비롯해 전망대, 음식점 등을 갖췄다.

그와 정반대쪽에는 유리 피라미드 형태의 독특한 건물이 보인다. '빛의 건축가'로 불리는 스위스 출신의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것으로 '아고라'란 명칭이 달렸다. 천장엔 고요한 밤하늘에 떠오른 보름달을 형상화한 국내 작가의 설치작품이 걸렸다.

신양해수욕장이 굽어보이고 성산일출봉이 눈에 걸리는 섭지코지는 빼어난 풍광을 품고 있(었)다. 영화 '이재수의 난'이나 드라마 '올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탁 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던 그곳으로 가면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림'이 됐다.

유명 건축가의 작품을 만나고 현대 미술의 흐름을 꿸 수 있는 공간이 섭지코지에 생겼지만 '거장'의 존재로 위안을 삼지 못하는 게 있다. '지니어스로사이'의 가로로 구멍난 공간으로 성산일출봉을 봐야 하는 것처럼, 휘닉스아일랜드에 발을 디디면 제주의 자연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글라스하우스'입구에 가로놓인 벽은 성산일출봉을 조망할 수 없게 만들고, '아고라'의 설치작품을 보기 위해선 회원이 아니면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을 지나야 한다.

그래서 '글라스하우스'에 있는 파랑갤러리에 전시중인 제주 작가의 2인전은 야릇한 감상을 남긴다. 제주의 원풍경은 이제 그림과 사진속에만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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