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물소중이 입은 2009제주해녀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물소중이 입은 2009제주해녀
  • 입력 : 2009. 05.26(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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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촬영대회 우수 작품
현장의 생명력 잃은 모습
지금, 이곳 진실된 기록을


조관빈(趙觀彬)의 '회헌집(悔軒集)'(1731)에 실린 '잠녀(潛女)를 탄(歎)한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해녀들은 추위를 무릅쓰고 이 바닷가 저 바닷가에 잠수해 전복을 따는데 자주 잡다보니 그 양이 적어져 진공(進貢)의 양에 차지 않는다. 그런 때에는 관부에 불려가 매를 맞고 심한 경우는 부모도 붙잡혀갔다. 해녀들이 부과된 수량을 채우기 위해 물에 들어갔다가 낙태를 하는 수도 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본 조관빈은 말한다. "지금 축신(逐臣)이 되어 이 섬에 유배되어 있지만 해녀들의 신세를 생각하면 전복을 먹을 기분이 나지 않는다. 지금부터는 나의 밥상에 전복을 올려놓지 말라."

맨 몸으로 물속에 뛰어들어 전복을 캐는 해녀는 제주여성의 다른 이름이다. 언제부터 제주 해녀가 있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그들은 매번 수십미터 물길을 헤치며 목숨을 건 물질(해녀가 바다에 나가 잠수하며 해산물을 잡는 일) 을 해왔다. 한때 수만명의 해녀가 제주 바다를 누볐지만 지금은 5천명 남짓한 이들만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차마 뛰어들기 어려운 일, 해녀 공동체에선 70대의 나이도 현역이 된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해녀는 제주섬을 특징짓는 상징적 존재다. 그래서 해녀는 카메라를 든 이들이 담고 싶어하는 '피사체'다. 실제 물질 시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성산포 우뭇개에선 일본, 중국 관광객들이 해녀들과 어깨를 겯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해녀촬영대회가 기획된 것은 이 때문이었을까. 어느 사진단체가 지난 4년간 서귀포시 해안가에서 펼친 해녀전국촬영대회 우수작을 이달말 서울에서 전시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주최측이 '우리의 소중한 유산인 해녀의 삶을 기록 보존하기 위해'치른 대회라고 해서 기대감을 안고 팸플릿을 넘기다 멈칫했다. 무명천 등으로 만든 해녀옷을 일컫는 물소중이와 물적삼을 입은 해녀들 때문이다. 서울 전시에는 해녀들의 실생활에 가까운 사진을 골라 선보이고 있다지만 씁쓸함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물소중이와 물적삼은 고무옷이 등장하면서 사라졌다. 70년대쯤의 일이니 오래됐다. 해녀촬영대회 입상작중에 그런 물소중이가 등장했다. 거기다 바다에서 캐낸 해산물을 담는 테왁 망사리(작업할 때 바다에 띄워 의지하는 큰 박 아래 달린 그물망)는 거개가 텅비어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공연용 소품 같았다.

해녀문화가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고 있다지만 오늘도 현장에서 물질하는 이들이 있다. 자치단체 지원을 받아 제주 해녀의 존재를 알리겠다며 시작된 대회라면 해녀의 생명력을 후퇴시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마침 문예회관에 전시되고 있는 제주전국사진촬영대회 입상작중에도 애써 과거로 거슬러간 '재현'사진이 보였다. 지금, 이곳 2009년 해녀들의 일상을 진실된 눈으로 기록한 사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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