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 아세안 정상들이 떠난 자리

[진선희기자의 문화현장] 아세안 정상들이 떠난 자리
  • 입력 : 2009. 06.09(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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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개최 장소 컨벤션센터
뒤늦게 끌어들인 제주문화
잇단 회의산업 홍보 전략을


한국적 소재를 특유의 화법으로 풀어놓는 중진화가 이만익씨. 벽 한켠에 걸렸던 그의 그림이 천천히 내려지는 중이었다.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회화로 유명한 제주출신 고영훈씨의 달항아리 그림도 환한 빛을 내려놓았다. 6월초 아세안 10개국 정상들이 걸음했던 제주국제컨벤션센터를 물들인 예술의 향기는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지난 3일, 아세안 정상들이 떠난 자리를 찾았다. 각종 설치물을 철거하느라 분주했다. 그런중에 한국과 아세안 참가국기가 지난 이틀동안의 열기를 말해줬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는 정상회의가 끝나자 사뭇 고무된 모습이다. 정상회의의 최대 수혜자는 주행사장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던 컨벤션센터라는 자평을 내놓았을 정도다. 대형 공연이 열리는 때에 맞춰 컨벤션센터 탐라홀을 찾은 기억이 있는데, 그새 확 달라져 있었다. 정상회의장, 공동성명 서명식장, 정상라운지, 출입구 등 정상들이 발길이 닿는 곳곳을 바꿔놓았으니 그럴만 하다.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해도 남은 과제는 있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제주를 방문한 이들이 평화로를 메웠던 깃발과 원색의 꽃밭에 반했을까. 그보다 자국에서 만나기 어려운 제주의 문화와 예술에 더 강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제2, 제3의 정상회의를 앞두고 제주문화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정상회의가 끝난뒤에도 컨벤션센터 로비에 남아있는 황토빛 '대바지'(작은 항아리)는 '제주적인 것이 없다'는 제주도지사의 말에 행사 관계자들이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급히 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수십점의 민구류가 박물관을 떠나 회의장으로 향했다.

컨벤션센터가 문을 연뒤 숱한 회의가 제주에서 열리고 있다. 회의산업을 통해 제주도의 이미지를 널리 알릴 생각이라면 치밀한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이번처럼 정상회의를 코앞에 두고 작업을 할 게 아니라 회의의 성격에 맞는 컨셉트를 미리 정하고 실내를 꾸미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 참가자들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이 회의장이어서다.

이번에 정상들이 앉았던 테이블 주변엔 궤(櫃), 허벅 등이 놓여 있었다. 아세안 국가 정상의 부인들이 만나는 장소에 '살레'(찬장 모양으로 짜서 부엌 한켠에 세워놓고 반찬이나 식기 등을 두는 가구)를 뒀다. 정상들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 화산섬 풍토를 헤쳐온 제주섬 사람들의 생활사가 그려졌다.

오피니언 리더 등이 찾는 국제 회의는 제주를 알릴 좋은 기회다. 제주문화는 그 전략의 중심에 놓일 수 있다. 제주를 판촉할 방법을 궁리할 때 제주문화는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맞춤하다. 품격있는 회의장을 구분짓는데 문화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정상회의 참가자들에게 호평을 받은 것도 문화가 있는 '풍경'이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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