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립미술관·문예회관 넘쳐
앞서 지어진 공간의 문제점
후대 운영엔 되풀이 말아야
지난 주말, 공교롭게도 문화공간을 다룬 심포지엄이 잇달아 열렸다. 제주민예총이 제주지역 공립미술관을 들여다봤고, 음악협회제주도지회가 국공립 공연장 등을 살폈다.
문화공간이란 그릇은 넘쳐나는데 거기에 담긴 음식은 맛이 없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이즘엔 문예회관을 지어라, 미술관을 지어라식의 인프라 확충을 요구하는 목소리보다 문예회관을, 미술관을 어떻게 '친관객형'으로 운영할까를 고민하라는 주문이 세차다. 지어만 놓고 제 구실을 못하는 공간들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공립박물관을 꼽아보자.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해녀박물관, 제주돌문화공원(돌박물관), 감귤박물관 등이 있다. 공립미술관은 제주도립미술관, 기당미술관, 이중섭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소암기념관 다섯곳에 이른다. 문예회관은 현재로선 제주도문예회관이 유일하지만 한라문예회관(가칭)이 준공을 앞두고 있고, 서귀포종합문예회관이 지난 1월 기공식을 가졌다.
공립 문화시설이 제주 곳곳에 흩어져있지만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립미술관만 해도 전문 인력 운용, 기획 전시, 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따져볼 때 걸음마를 떼어놓지 못한 형국이다. 문예회관은 지금도 기획프로그램 보다 바깥 문화예술단체나 개인에게 공연장을 빌려주는 대관 사업이 주를 이룬다. 70~80년대 '문예회관 시대'에 머물러 있다.
두 개의 심포지엄은 지역의 문화 현실을 새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전국의 공립미술관, 문예회관과 견줘놓고 보니 지역 문화공간 운영의 허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문화예술 교육 등을 통해 관객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시절인데 제주에선 어떤가. 앞서 지어진 문화공간 운영에 대한 반성과 점검이 부족하다. 무엇으로 공간을 꾸밀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우선되어야 하는데 건물을 지어놓고 그 안을 채울 생각을 하니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
공립미술관 심포지엄에선 '만시지탄'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미 도립미술관이 건립되기 이전에 문화계에서 바람직한 공립미술관의 운영 방향, 부지 등에 대한 의견을 냈지만 '마이동풍'격이었던 사례가 있어서다.
그럼에도 지역 문화공간 운영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해 관심을 늦춰선 안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직 기회가 남아있는 곳도 있다. 서귀포종합문예회관이 그 예다. 음악협회제주도지회 심포지엄에 참석했던 도내 문화예술인은 "앞으로 제주지역에 문예회관 3곳이 운영되는데 이들을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궁리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머지않아 3개 문예회관의 효율적 운영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각계에서 머리를 맞대는 자리가 마련될 지도 모르겠다. 지자체에서 지어놓은 문화공간, 이젠 냉정한 얼굴로 뒤를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