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세계유산을 빛낸 사람들](17·끝)에필로그-(하)

[제주 세계유산을 빛낸 사람들](17·끝)에필로그-(하)
타케, 온주밀감 최초 도입… 겐테, 한라산 높이 첫 측정
  • 입력 : 2009. 10.14(수) 00:00
  • 강시영 기자 sykang@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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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기 제주 감귤원이 눈쌓인 한라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 경관이다. 제주감귤산업은 프랑스 신부 타케가 1911년 온주밀감을 도입한 이래 제주의 효자산업으로 성장해 왔다. 제주자치도는 제주감귤산업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독일 출신의 언론인이자 지질학자인 겐테는 20세기초 서양인으로는 최초로 한라산을 등정, 그 높이가 1950m라는 사실을 최초로 밝힌 인물이다. /사진=한라일보 DB

역사는 기록에 의해 재창조되며 생명력을 갖는다. 역사속의 인물을 들추어내 평가하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평가의 기준과 잣대가 시대상과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해석도 다양해질 수 있다.

■ 타케신부(1873~1952)
교계·학계·행정등 재조명 움직임
감귤산업 100년 기념사업 공론화


타케(Emile Joseph Taquet·1873~1952)는 프랑스 출신의 신부다. 20세기에 들어와 서귀포 한논(하논)과 홍로(서홍)성당에서 활동했던 성직자였다. 그러나 그의 주무대는 한라산이었다. 그는 제주의 식물을 처음으로 서양세계에 널리 소개한 식물채집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타케는 100여년 전인 1902년 제주도에 도착해 1915년 6월까지 13년간을 서귀포에서 활동하는 동안 수만점의 식물을 채집해 외부세계에 알렸던 장본인이다. 식물학자들은 타케 신부가 제주도 포교에 종사한 때가 한국식물분류학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때라고 평가한다. 서귀포에서 근대적 의미의 감귤을 처음 재배하기 시작한 것도 타케다. 제주 감귤사에는 타케가 제주감귤재배에 끼친 공로를 적고 있다.

최근 교계와 학계, 행정을 중심으로 타케에 대한 재조명 필요성과 직·간접으로 그와 관련된 기념사업 움직임이 일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타케에 대한 조명작업은 성직자로서 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식물을 채집하고 처음 서양으로 전파한 식물학자, 감귤을 재배한 주역으로서 초점이 모아질 것이다.

2011년은 노지온주 밀감이 도입된지 100주년이 되는 해로 공식 기록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오는 2011년 감귤산업 100주년을 앞둬 100주년 기념사업을 전개할 방침이며 이같은 계획을 김태환 지사에게 보고했다. 제주의 생명인 감귤산업을 미래 100년을 향한 비전을 설계, 더욱 육성 발전시키고 제주관광의 활로까지 모색하기 위해 100주년 기념사업을 범도민적으로 전개한다는 것이 제주자치도의 기본 전략이다. 이를 위해 제주자치도는 올해안에 제주감귤발전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실행계획 마련에 착수할 방침이다. 추진위원회는 행정과 학계, 관련 기관단체, 독농가를 참여시킴으로써 100주년 기념사업에 담을 핵심사업을 발굴하고 실행·자문역할까지 수행하는 기구로 구성하는 방안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감귤산업 100주년 기념사업은 타케로 부터 출발한다. 서귀포에 온주밀감을 전파한 최초의 인물이 바로 타케 신부이기 때문이다. 이때가 1911년이다.

훗날 우리나라 최대 감귤주산지로 탈바꿈한 서귀포지역 온주밀감 재배가 타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타케 신부는 1902년 서귀포 '한논성당'에 첫 부임한 이후 1915년까지 서홍(당시는 烘爐)성당에서 선교활동과 식물채집을 하는 동안 일본으로부터 온주밀감(溫州密柑)을 들여와 서홍성당 일대에 심었다. 그가 도입한 온주밀감은 1911년 역시 프랑스 출신 성직자로 일본 아오모리에 주재하던 '포리'(Faurie R. P, 1847∼1915) 신부로부터 받은 묘목이다. 타케는 모두 10여그루의 감귤을 심었으나 지금은 옛 서홍성당 자리에 1그루만 남아 있다.

이에 따라 타케에 대한 재조명사업이 교계와 학계, 행정을 중심으로 보다 구체화될 필요성이 제기된다. 타케가 제주에 남긴 온주밀감이 제주의 효자산업으로 부흥하기 까지는 타케라는 인물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타케 신부에 대한 재조명은 지지부진하다.

■ 겐테박사(1870∼1904)
유럽에 한라산·제주 알리는 기폭제
국내외 재조명 활발… 제주선 답보


제주의 지질학적인 재발견은 독일의 지질학자이자 언론인인 지그프리트 겐테(Siegfried Genthe·1870∼1904)의 한국여행기를 통해서였다. 그는 1901년 '이재수란'이 발생한지 수주일 뒤 제주에 왔던, 당시 독일 퀼른신문의 아시아 특파원이자 지리학 박사였다. 그는 영실 옛등반로를 따라 한라산을 올랐는데 서양인은 물론 외국인으로서 한라산을 처음 등정한 인물이다. 특히 한라산 높이가 1950m라는 사실을 처음 측정한 인물로 기록된다.

겐테의 한국여행기는 이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겐테의 여행기는 그가 세상을 떠난(1904년)지 1년 뒤인 1905년 그의 동료 게오르그 베게너(Georg Begener)박사에 의해 베를린에서 '겐테, 코리아'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되면서 유럽에 한라산과 제주를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겐테에 대한 관심은 독일과 우리나라에서도 줄곧 화두가 돼 왔다. 겐테의 한국 여행기가 출간한지 꼭 100년만인 2005년 5월에 독일 에어푸르트대학교는 그 개정판을 동아시아사 총서 일곱번째 책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정작 제주에서는 겐테처럼 제주의 가치를 국내외에 알리고 제주도학의 기초를 놓는데 크게 기여한 서구인들에 대한 본격적인 조명과 글로벌 네트워크는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 세계자연유산의 국제 인지도 확산을 위한 대륙별 거점지역 네트워크 구축과 학술교류를 전개중이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 유럽에서는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미주에서는 미국, 대양주에서는 뉴질랜드와 교류를 진행중이거나 추진중이다.

이에따라 세계자연유산 제주의 국제교류는 과거 제주에 큰 족적을 남긴 외국 선각자들의 나라로 확대시킬 필요성이 제기된다. 타케와 겐테의 사례는 제주 세계자연유산의 국제교류에 있어서도 훌륭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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