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당미술관 찾은 올레꾼들
코스 벗어나 '제주화'체험
문화자산도 놓치지 말아야
미술관을 빠져나오는 길에 한 무리의 관광객을 만났다. 가벼운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은 사람이 대부분이라 한눈에 봐도 올렛길을 걷기 위해 제주를 찾은 이들로 보였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서울에 사무실을 둔 문학과 문화를 사랑하는 모임(문학사랑)이 벌이고 있는 '제주올레 녹색문학투어' 참가자들이었다.
지난 17일 서귀포시 기당미술관. 녹색문학투어에 참여한 30여명이 그곳을 찾은 이유는 변시지 화백 때문이었다. '황토빛 제주화'로 불리는 변 화백의 그림을 직접 보고 싶어 상설전시실이 마련된 기당미술관으로 향한 것이다.
이날 문학투어는 정호승 시인과 함께하는 행사였다. '절해고도'에 불어대는 바람이 화면위를 휩쓰는 듯한 그림 앞에서 정호승 시인도 오래도록 걸음을 멈춰섰다.
1987년 서귀포시가 지은 기당미술관은 뒤늦게 생겨난 이중섭미술관에 비해 올렛길을 찾는 사람들(이들을 '올레꾼'으로 부른다)에게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이중섭미술관은 올레 코스로 거쳐가는 곳이어서 종종 등산복 차림의 관람객이 찾아든다. 올레꾼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중섭미술관의 홍보 효과가 크다.
녹색문학투어가 이중섭미술관 대신 기당미술관을 택한 또다른 사연은 이런 거였다. 이미 올렛길을 걸으며 이중섭미술관을 관람했던 참가자들이 여럿 있어서다. 제주의 새로운 문화 탐방에 대한 바람이 더해져 기당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리게 됐다.
올렛길 걷기는 '신드롬'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날 서귀포시에 머무는 동안 마주친 수많은 올레꾼들은 그것을 증거하는 것처럼 보였다. 올렛길을 걸었던 지인은 보잘 것 없었던, 주목받지 못했던 제주섬의 길에서 희망을 길어올리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점은 '제주올레'의 시작을 빚어낸 이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이런 열기속에 문득 올렛길 밖을 생각해본다. 올레 코스에서 멀찍이 비켜선 곳에 숨쉬고 있는 유무형의 문화 자산에도 눈길을 돌려보자는 거다. 기당미술관도 그런 예다. 어떤 올레 코스를 걷고, 거기서 무엇을 볼 것인가는 올레꾼들의 선택에 달렸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냥 걸어도 좋은데 거기에 무얼 더…"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올레 코스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이들을 위해 올렛길 밖의 정보도 세밀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녹색문학투어처럼 제주밖에서 제주올레에 눈길을 돌린 경우 올렛길 밖의 제주문화가 더해지면 한층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느린 걸음'의 가치를 끄집어낸 올렛길에 동행할 '무엇'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