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의 역사,제주](30)연재를 마치며

[표류의 역사,제주](30)연재를 마치며
바닷길 헤친 표류기로 제주 해양문화 다시 읽자
  • 입력 : 2009. 12.25(금)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제주에 표류했던 네덜란드인 하멜을 기리는 서귀포시 안덕면 용머리해안의 하멜상선전시관이 그림같은 배경 아래 들어서 있다. /사진=강경민기자

장한철 표해록에서 김비의 오키나와 외딴 섬 표류기까지
표류는 부정적 어휘 아닌 새로운 세상 만나는 긍정의 언어


제주시 화북포구에서 시작된 여정이었다. 지난 겨울, 잠시 기세를 누그러뜨린 제주 바다와 마주하며 '표류의 역사, 제주'의 첫 발을 뗐다.

표류는 대개 뜻밖의 사건이다. 그래서 생사가 갈린 사람들의 사연이 극적인 드라마처럼 회자되거나 기록으로 남겨진다. 살아남은 자들의 기록인 표류기에는 그래서 어떻게 표류하게 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특정 지역에 표착했는지, 표착지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떻게 고향으로 돌아왔는지 상세하다.

연행사와 통신사와는 다른 비공식적인 집단이 경험하는 표류. 무계획적인 일련의 사건을 겪는 탓에 표류기는 두 공식적인 기록보다도 역동적으로 사건이 전개되며, 다양한 시점이 존재한다. 예고없이 맞닥뜨린 상대의 문화가 표류인에게 미칠 충격을 짐작해볼 수 있다.

# 낯선 문화가 안겨준 충격과 환희

제주는 표해록의 단골 배경지다.'표류의 역사, 제주'에서는 표해록에 나타난 여정을 좇는 일이 많았다. 맨 처음 장한철의 표해록을 뒤적였다.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로 유명한 '슬로시티'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를 찾았다. 지난 1월의 일이다. 청산도에선 맑은 날이면 제주가 눈에 들어온다.

240여년전쯤 청산도에 제주 애월 사람 장한철이 표류한다. 바람불고 비가 내렸던 1771년 신묘년 정월 초6일 청산도에 표착해 날이 맑은 정월 13일 섬을 떠난다. 장한철은 "이 땅은 청산도였고 주인은 박중무였다. 해안가로부터 이 마을까지의 거리는 거의 10리였다"며 수백년전 청산도의 모습을 그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청산도 사람들은 제주 표류인들에게 대가없이 베풀었다. 장한철은 표해록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주민의 이름을 일일이 적어놓았다.

청산도 뿐인가. 표해록의 노정을 따라나선 동안 바닷길을 통해 밀려든 이들을 품어안은 기록을 숱하게 봤다. 베트남에 표착했던 고상영 표류기에는 "촌가에 가서 입을 가리키며 배를 두드렸다. 그러자 두 사람을 집 안으로 맞아들이고 의자에 앉히더니 차와 술을 권했다. 이어 탁자 하나에 밥과 반찬을 내오는데 푸짐하고 깔끔했다"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 오키나와현 외딴섬 요나구니에 표착한 이후 나하까지 여러 섬을 경유했던 김비의 일행의 표류기에도 섬 사람들이 또다른 섬 사람들에게 베푼 온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태풍 날씨로 제주 해안에 몸을 피한 수많은 어선들. 바다를 끼고 사는 이들에게 표류는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는 사건이다.

# 이국의 풍물 적극적으로 체험

제주에 얽힌 표류기를 통해 밖을 향해 열려있던 제주 사람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고기잡이를 위해, 진상품을 실어나르기 위해, 물건을 팔기 위해 배에 몸을 실었다 정처없이 떠밀려간 표류인들은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을 주저하지 않았다. 글을 제대로 모르는 백성들이 많았지만 생애 처음 접한 풍물을 적극적으로 체험하고 돌아왔다.

표류인들의 경험은 때때로 진실된 눈으로 이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했다. 이방익 표해록은 한 예다. 연암 박지원은 이방익의 표류 경험담을 거론하며 "민월(양자강 이남땅)을 건너면서 중국이 안정되고 조용하다는 사실을 증명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의 뭇 의심을 통쾌하게 깨뜨린 바, 그 공적은 그렇고 그런 일개 사신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제주 사람들의 표해록은 옛 기록에만 머물지 않는다. 수백년전 표류로 맺은 인연을 민간 교류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477년 김비의 일행이 머물렀던 오키나와현 이리오모테섬. 표착지 요나구니와 이웃한 섬으로 김비의 일행은 이곳에서 5개월쯤 체류했다. 제주4·3유족회는 지난 10월 이리오모테섬에서 '제주·오키나와 표류·교류 530주년 간담회'를 가졌다. 4·3유족회가 지난해 '제주4·3을 생각하고 배우고 행동하는 모임-한라산회' 초청으로 오키나와를 방문했던 길에 우연히 이리오모테를 방문하면서 성사된 행사다. 2009년은 김비의 일행이 제주로 살아돌아온지 530주년이 되는 해다.

이리오모테섬 간담회 참석자들은 비극적인 역사를 간직한 제주와 오키나와가 김비의 표류를 평화 교류의 밑돌로 삼아 지속적으로 만나자고 뜻을 모았다. 이들의 바람처럼 내실있는 교류가 진행되기 위해선 제주 관련 표류기에 대한 조명과 더불어 각계의 관심이 뒤따라야 한다.

# 해양문화 콘텐츠 적극 개발을

같은 달, 제주도의회에서는 장한철 표해록을 토대로 해양문학관을 조성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강창식 도의원은 장한철의 표해록에 담긴 제주인의 진취적 기상과 해학, 위기를 헤쳐가는 지도자의 역량 등에 주목하며 고향인 애월리에 해양문학관을 짓자고 밝혔다.

제주에 표류 관련 유적이 없는 것이 아니다. 산방산 자락 용머리해안에 들어선 하멜상선전시관이 대표적이다. 빼어난 풍광을 품고 있는 곳에 지어진 공간이지만 표착지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하고 전시관 콘텐츠가 부실하다.

제주섬 해양문화를 새롭게 들여다보고 콘텐츠를 개발하는 작업이 필요해보인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이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섬이라는 특이성에서 비롯됐다. 해상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오랜 세월 이어져온 영등굿은 바다를 끼고 사는 제주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는 대표적 유산으로 꼽힌다.

'표류의 역사, 제주'에서 다룬 갖가지 표류 사건은 바다가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임을 보여준다. 바닷길을 통해 섬과 섬이 만났고 양국의 문화가 교류했다. '물에 떠서 흘러감', '정처없이 돌아다님'이란 뜻을 지닌 표류는 기약없이 떠도는 부정적 어휘가 아니라 새로운 바깥 세상을 만나기 위한 긍정의 언어가 아닐까. <끝>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이뤄지고 있습니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2264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