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유산을 찾아서-17](5)바다와 신앙-①음력 2월 영등굿

[해양문화유산을 찾아서-17](5)바다와 신앙-①음력 2월 영등굿
"미역 씨 뿌리고 소라· 전복씨 주고 갑서"
  • 입력 : 2010. 09.13(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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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제주시 사라봉 시민공원에 들어선 칠머리당에서 열린 영등송별제. 제주의 영등할망은 해산물의 씨를 뿌리는 신으로 그 역할이 분명한 편이다. /사진=강희만기자

영등하르방·영등할망 등 호칭… 어업·해녀 채취물 풍요 빌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 칠머리당영등굿 후속 작업 필요

"영등하르바님, 어진 우리 하르바님. 밥이 없고 옷이 없는 마을 백성 부디 좋게 도와 줍서. 우마 번성 오곡 풍성 미역 풍성 시켜줍서. 미역 씨 주고 갑서. 소라·전복씨 주고 갑서. 산디 씨 주고 갑서. 좁씨도 주고 갑서."

조선말기 방성칠란과 이재수란을 다룬 현기영의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의 한 대목이다. 그랬다. 제주 사람들은 음력 2월 영등달이 되면 바람의 신을 맞아들이고 떠나보내는 의식을 치렀다. 영등굿이다.

▶2월 초하루 왔다가 보름날 떠나

영등달에 얽힌 속신은 이렇다. 영등달 영등바람이 훑고 간 갯바닥은 속이 빈 소라·고둥이 많다. 밭에 거름을 하거나 지붕 이엉을 새로 갈면 그해 흉년이 들고 빨래만 해도 된장에 구더기가 슬었다. 남자들은 이때 갯일이나 들일을 하지 않았다.

바다를 품어사는 제주에선 오래도록 영등굿이 이어져왔다. 제주시 건입동, 조천읍 북촌리, 함덕리, 구좌읍 김녕리, 하도리, 성산읍 수산리, 신풍리, 오조리, 온평리, 신양리 등에서 여러 형태의 영등제가 전해져오고 있다.

현용준의 '제주도 영등굿' 등에 따르면 영등굿은 마을에서 행하는 당굿이지만 그 마을의 수호신인 본향당신이 아니라 영등신을 맞이해 어업과 해녀 채취물의 풍요를 빈다. 영등과 관련한 기록에선 연등(燃燈), 영등(迎燈) 등의 한자 표기가 보인다. 영등할망, 영등하르방 등으로 불리는 영등신은 대개 영등할망이란 여신으로 여기고 있다. 이 신은 강남천자국이나 외눈박이섬에 사는 신인데,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제주도로 찾아왔다가 같은 달 15일에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2월 초하룻날 귀덕·김녕 등지에서는 목간 12개를 세워서 신을 맞이하여 제사 지내고, 애월에 사는 이들은 떼배 모양을 말머리와 같이 만들어서 비단으로 곱게 꾸미고 약마희를 해서 신을 즐겁게 하였다. 보름날에 끝을 맺는데, 이를 연등이라 한다. 이달에는 승선을 금하였다."

▶미신 타파 탄압 딛고 면면히 남아

이처럼 오래전부터 행해진 영등굿은 바닷가 사람들을 중심으로 끊이지 않고 내려왔다. 오늘날 영등굿이 행해지는 방식은 옛 기록과 다르다. 마을마다 제차가 다소 차이나는 경우도 있다. 영등굿이 전승되는 대표적인 곳은 제주시 건입동이다. 마을의 어부와 해녀들은 음력 2월 1일에 영등환영제를 하고, 14일에는 영등송별제를 치른다. 이중 영등송별제는 건입동 본향당인 칠머리당에서 진행된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에는 다른 영등굿과 달리 영감놀이가 등장한다. 문무병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이사장은 "선박과 선주, 어부들의 수호신인 영감을 청하여 노는 영감놀이가 삽입돼 굿의 규모가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전승돼온 칠머리당영등굿은 지난해 9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랐다. 유네스코는 결정문에서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제주도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구현시키고 삶의 터전인 바다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존경의 표현"이라고 적었다. 저 멀리 조선 시대 신당 파괴에서 가깝게는 새마을운동 당시의 미신 타파운동으로 인한 탄압까지 고난을 겪었던 영등굿이 무형문화유산에 이름을 더하면서 새삼 그 가치에 눈길을 돌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올해로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30주년을 맞은 칠머리당영등굿을 전승하는 데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굿 전승자 확보, 전승 지원비 확충, 신당 이전 문제 등 영등굿을 제주의 또다른 전통문화로 빛깔을 입히기 위한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영남-제주엔 왜 영등신이 우세할까

'영등할머니 신앙 연구'논문에 나타난 지역별 '영등'
영남서 영등까꾸지·요왕먹이기 등 바람신 대접 극진


제주에만 영등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발표된 남향의 한남대학원 석사 논문 '영등할머니 신앙 연구'(2009)에 따르면 영등신은 지역별로 호칭이 다르게 나타난다. 동일 지역권에서도 형태가 제각각이다.

민속자료에 드러나는 호칭을 보면 각 지역마다 영등할머니란 이름이 공히 등장한다. 강원도에서는 그것에 풍신할머니, 바람할머니, 바람님, 제석할머니란 호칭이 더해진다. 충북은 영등할미, 영동할머니, 이월할머니 등으로 호칭이 드러나고 충남에선 영등할미, 이월 영등할머니, 이월손님 등으로 부른다. 경남은 영등할만네, 영등할매, 영동할매, 영동할망네, 제석할매, 이월풍신님네 등으로 구전됐고 경북은 영두할만네, 영등, 영등할매 등의 이름이 분포되어 있다. 전남·북 역시 영등할머니 등의 호칭이 조사됐다.

역사 문헌상에는 연등(然燈), 영동(靈童), 영등(迎燈), 영등(靈登) 등 호칭이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중 대상 지역이 제주도와 영남 지역에 한정한 점이 눈길을 끈다. 남향씨는 "영등할머니 신앙이 발생한 지역이 제주도인지 영남 지역인지 분명하게 밝힐 수 없다"면서 "오늘날에도 영등할머니 신앙이 우세한 지역 역시 육지의 영남과 제주도 지역인 점도 주목할 만 하다"고 했다.

영등할머니 신앙은 지역별로 어떤 특징이 있을까. 영남과 제주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포항부터 영덕, 울진까지 바닷가 마을에서는 공통적으로 영등할머니를 위한 어물을 매달아 둔다. 어물을 매달기 위해 '영등까꾸지'로 불리는 도구도 설치한다. 이곳의 영등할머니는 뱃일을 하는 식구의 안전을 지켜주고, 풍어를 보장하는 신령이다. 경남 합천에서는 2월 초하루에 별도로 제물을 마련해 마을의 깨끗한 냇가나 공동 우물에서 요왕먹이기를 행한다. 거제도 등 해안가 지역에서는 영동시, 영동 초시, 영동 뒷시 등 물때를 가리키는 용어도 있다. 이들 지역에선 2월 초하루부터 보름 사이에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심한 때를 영동시라고 칭한다.

육지에서는 영등할머니를 각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모시는 반면에 제주 지역은 심방과 주민 전체가 영등굿을 치른다. 농업·어업 등 생업을 돌보는 신령으로 인식하는 육지에 비해 제주 영등할망은 해산물의 씨를 뿌리는 신으로 그 역할이 보다 분명하다.

이 논문은 결론에서 "영등할머니 신앙이 한반도 동남부의 제주도와 영남 지역에 집중하는 원인이 밝혀져야 한다"면서 "한반도 동남부 지역의 지리적 특성, 음력 2월에 부는 바람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그래야만 영등할머니가 이 지역에서 극진하게 믿어지는 이유를 규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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