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문화유산을 찾아서-18](5)바다와 신앙-②칠머리당영등굿

[해양문화유산을 찾아서-18](5)바다와 신앙-②칠머리당영등굿
삶의 터전인 바다를 향한 제주 사람들의 존경 담아
  • 입력 : 2010. 10.04(월) 00:00
  • 진선희 기자 jin@hall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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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안사인 심방이 제주칠머리당에서 영등굿을 하고 있다. 예전의 칠머리당 모습으로 김수남 사진굿 '혼'(2007)에 실려있는 사진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이후 작업 더뎌
칠머리당 이전·복원 등 놓고 관심
무가 분야 전수조교 확충도 과제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전승자들이 제주시 사라봉 자락에 들어선 전수관에 모여들어 기메를 만들고 있었다. 기메는 굿에 쓰이는 갖가지 형태의 종이조형물을 말한다. 이튿날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열리는 '토요명품공연'에 초청된 터였다. 매월 넷째주마다 '세계무형유산 프로그램-세계인이 함께하는 자랑스런 우리유산'공연이 펼쳐지는데 지난달 25일엔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날 공연엔 보존회원 8명이 참여해 1시간 30분으로 축약한 영등굿을 선보였다.

▶세계인에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할 때

칠머리당은 제주시 건입동의 본향당을 일컫는 이름이다. 건입동에서는 오래전부터 1년에 두번 굿을 치러왔다. 음력 2월의 영등환영제와 영등송별제다. 칠머리당은 영등신을 주신으로 영등굿을 벌인다는 점에서 여느 본향당과 차이를 보인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전승해온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지난해 9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당시 결정문에서 "연례의식과 문화축제인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제주도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구현시키고 삶의 터전인 바다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존경이 드러난다"고 했다.

영등굿을 포함한 제주무속은 오랜 세월동안 미신으로 거친 냉대와 탄압을 받아왔다. 이런 현실에서 영등굿이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이름을 올리면서 제주무속으로 이어져온 제주의 또다른 전통문화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주도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보존 활용방안에 대한 관심이 커가는 것에 맞춰 연구 용역을 실시했다. 용역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유산인 영등굿을 어떻게 세계인에게 보여줄 것인지를 탐색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제주시 사라봉 산책로로 옮긴 지금의 칠머리당. 굿이 행해지지 않을 땐 표지석만 덩그러니하다. /사진=강희만기자

▶다른 마을 영등굿 보존방안 마련해야

1981년 칠머리당영등굿 보유자였던 안사인 심방(작고)이 칠머리당에서 영등굿을 행하는 사진이 전해진다. 당시 영등굿에는 150세대의 해녀와 어선을 가진 선주의 부인들이 참석해 풍어와 바다 안전을 기원했다. 네모낳게 돌담으로 둘러싸인 칠머리당 위로 음력 2월 영등바람이 불어댄다. 바다와 인연을 맺고 사는 사람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칠머리당의 풍경이다.

하지만 본향당의 위치가 바뀌었다. 80년대 중반까지 사용했던 칠머리당은 도로가 나면서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은 하루 수백명이 드나드는 사라봉 산책로 입구에 칠머리당이 있다. 제주칠머리당이란 빗돌이 없으면 신당인지 알수 없는 장소다.

용역을 맡은 제주전통문화연구소는 이와관련 "현재의 제단과 신위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고 종교적 공간으로서 필요한 폐쇄성이 부족하다"면서 "사라봉 구역내에서 가장 적합한 부지를 찾아내 현재의 신당을 이전시키고 과거의 자료를 활용해 원형을 복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세계문화유산 영등굿에 던져진 과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제주지역 무형문화재 종목에 비해 전승자층이 두터운 편이지만 칠머리당영등굿 전수교육에 몰두할 수 있는 형편이 안된다. 또한 2명의 전수조교가 있지만 악사 출신으로 무가기능을 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 칠머리당영등굿만이 아니라 조천, 북촌, 우도, 법환 등에 힘겹게 전승되고 있는 영등굿의 보존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용역보고서는 영등굿문화관 조성, 학술 연구와 출판 사업도 제안해놓았다.

어느덧 칠머리당영등굿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1년을 넘겼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올해로 30주년이 되고, 보유자였던 안사인 심방이 작고한 해를 셈하면 20주기가 된다. 2010년은 여러모로 칠머리당영등굿에 의미있는 숫자를 붙일 수 있는 해다. 하지만 지금껏 칠머리당영등굿을 제주 바깥에 알리려는 제주도의 움직임은 만나기 어려웠다. 그래서 유네스코 등재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는 이들이 많다.

김윤수 칠머리당영등굿 보유자 "기념할 일 많은 해 대중적 굿판 계획"

"예전처럼 바닷가 쪽으로 옮긴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지금의 칠머리당을 신당 분위기가 나도록 정비하는 일이 우선인 것 같다."

김윤수(64)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보유자는 칠머리당 이전·복원 이야기를 꺼내자 그렇게 말했다. 김윤수 심방이 칠머리당영등굿 보유자가 된 해는 1995년. 그는 칠머리당을 옮기기전 영등굿을 행했던 기억을 꺼내놓으며 "파도소리를 들으며 굿을 하다보면 신을 청하는 느낌이 남달랐다"고 했다.

스무살되던 해 큰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심방의 길로 들어선 김윤수 보유자는 "굿을 한다고 멸시받았던 때에 비하면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면서 "특히 칠머리당영등굿이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굿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보유자는 제주시 제일교회 사거리 부근, 제주종합경기장 야구장 건물 등을 전전하다 지금의 제주시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 터를 잡기까지 보존회의 역사와 함께했다.

하지만 유네스코 등재 이후 칠머리당영등굿 보존과 활용 방안에 대한 당국의 관심은 크게 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하지만 크게 변한 것은 없다"면서 "강릉단오제처럼 지역 인사들이 모여들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활용방안을 찾는 것과 비교가 된다"고 아쉬운 심정을 나타냈다.

보존회는 올해 칠머리당영등굿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30주년이면서 안사인 심방 20주기가 되는 만큼 뜻깊은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문제는 예산 확보다. 김 보유자는 유네스코 등재 1주년 행사는 탐라문화제 시연을 겸해 치렀다 하더라도 두 행사를 기념한 굿판은 대중들과 가깝게 만날 수 있도록 좀 더 의미있게 준비하고 싶다는 바람을 비쳤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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