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 받은 제주도의 대표 명소 9곳 가운데 한경면 고산리 수월봉은 '화산학 교과서'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바다 속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로 화산가스와 함께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땅 위로 흘러간 과정, 화산재 더미가 약간의 시차를 두고 겹겹이 쌓인 과정, 갖가지 형태의 퇴적구조 등을 잘 보여주고 있어서 그렇다. 지질학적으로 가치 있고 세계적으로 희귀한 데다 경관 또한 아름답다.
지질공원 인증으로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자연환경 관련 3관왕을 차지한 쾌거는 지난 3년 동안 관계 기관과 단체, 도민들이 힘을 모아 이룩해낸 일이었다. 제주도는 다시 '세계 7대 경관' 선정에 힘을 쏟고 있다. 자연환경에 관한 한 세계가 인정하는 모든 타이틀을 거머쥐겠다는 야심찬 도전이다.
문제는 어렵사리 따낸 타이틀을 어떻게 활용해 그 가치를 극대화하느냐 하는 것이다.
수월봉에는 오래 전에 세운 안내판 하나가 고작이다. 수월봉의 경관과 지질학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해안 절벽 아래 '엉알'은 육지에서 파도를 타고 밀려온 온갖 쓰레기들로 가득하다. 2013년 아·태지역 지질총회나 2014년 세계지질공원 총회 관계자가 후보지 중 하나인 제주도를 방문해 현장 확인에 나설까 걱정이 앞선다.
구체적인 보존·활용계획을 서둘러 마련하라고 재촉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준비는 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제주도의 조직개편안이나 예산내용을 보면 그 '준비'가 인증을 받는 데 들인 노력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다.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지질공원 관리업무가 각기 분산되도록 짜여진 조직개편안으로는 3관왕의 타이틀에 걸맞은 통합적인 보전·활용계획을 기대하기 어렵다. 또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위한 홍보에 20억원을 쓰면서 지질공원 관련 예산은 인증 1주년 기념사업비 3000만원 뿐이다. 따놓은 면허는 장롱에 처박아 둔 채 또 다른 면허를 따려고 애쓰는 격이다.
'교육과 지질관광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한다는 지질공원 인증 취지를 살리려는 '준비'는 없이 인증 자체를 기념하는 사업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정책은 예산이다. 지질공원 인증이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예산을 확보해놓아야 한다. 도의 환경관련 조직은 통합적인 관리가 가능하게 짜여져야 한다. 최근 환경부와 산림청 사이에 벌어진 충돌이 좋은 예다. 제주도의 지질을 연구할 인력 양성도 시급하고, 해당 지역 주민들의 협조를 얻어내는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장롱면허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운전대를 잡을 때다.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