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도남동 성환상가 앞 4거리에는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뻥튀기 트럭이 서 있다. 올해 쉰두살 동갑내기 강경수 김문희씨 부부는 13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다. 월 150만~200만원의 만만치 않은 벌이지만 뻥튀기만으로는 아이들 키우기가 녹록지 않다. 부인 김씨는 닷새에 하루는 오일장 식당에 나가 일당 6만원짜리 허드렛일도 하고, 남편 강씨는 여름철이면 뻥튀기 트럭 옆에서 수박을 팔기도 한다.
요즘은 마트마다 뻥튀기를 파는 바람에 수입이 준 데다, 둘째까지 대학에 진학하게 돼 강씨는 다른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달 0.5톤 트럭을 할부로 구입해 생밤 행상에 나선 것이다. 서귀포 한림 모슬포 조천 신제주 등 제주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하루 40kg들이 한두 마대씩을 팔아 한달동안 2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전자오르간 연주자이던 강씨는 제주에 온 지 18년이 됐다. 원래 음악을 좋아해 고향 광주에서 전자오르간을 익힌 뒤 서울 스탠드 바에서 10여년동안 일했다. 같은 업소에서 일하던 동료가 "인형처럼 예쁜 여성"이라면서 제주 출신의 간호사를 소개했다. 6개월여를 사귄 끝에 결혼에 이르렀다.
제주로 이주한 것은 90년대 초 서울의 밤 업소 영업시간이 12시로 제한됐지만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할 수 있는 제주에서는 수입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가라오케가 성행하면서 연주자의 생활도 끝났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뻥튀기 트럭 행상이었다.
강씨 부부는 아이들 공부 잘 시켜서 당당하게 사회에 진출시키는 게 꿈이다. 아이들은 잘 자라주고 있다. 큰 아들은 도내 한 대학의 물리치료학과에 재학중이고 둘째아들은 올해 경기도에 있는 대학 애니메이션학과에 입학했다. 두 아이의 대학 등록금을 대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돈을 벌어야 한다. 강씨는 밤 생산이 끝나는 오는 3월부터는 성주참외를, 그리고 여름에는 홑이불을 취급할 생각이다.
살아가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슬퍼하지도, 절망하지도 않는 이들 부부는 행복하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면 이웃을 위해 사는 삶을 꿈꾸고 있다. 처음 서울에 올라갔을 때 연주실력이 없다고 업소를 쫓겨나 1년여 동안 거리를 헤매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끼니를 굶은 적도 많았다. '벼랑 끝에 홀로 선 인생'이라는 느낌이 떠나지 않았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사회봉사와 교회봉사로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일을 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됐다.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 강경수 김문희씨 부부는 새해에도 아름다운 꿈을 키우며 꿋꿋하게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