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범의 제주생각]양윤모의 절규

[고희범의 제주생각]양윤모의 절규
"삶을 파괴해서 얻으려는 더러운 안보
우주보다 무거운 사람 목숨 우선해야"
  • 입력 : 2011. 06.02(목) 00:00
  • 글자크기
  • 글자크기
한 영화인의 목숨을 건 단식이 1일로 57일째 계속되고 있다. 그의 단식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

제주출신의 영화평론가 양윤모.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재작년 8월 강정주민들이 제주도를 일주하는 해군기지 반대행진에서였다. 행렬이 함덕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하던 시간, 때맞춰 도착한 나에게 그가 다가왔다. 자신을 소개한 뒤 주민들의 행진을 격려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를 일 때문에 고향에 왔다가 해군기지 문제에 잠시 관심을 보이는 영화인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길로 강정에 주저앉은 지 2년. 나이에 걸맞지 않은 백발에, 멋쟁이 안경을 끼고, 온순하고 겸손한 그는 강정 앞바다 구럼비 바위 위에 쳐놓은 천막 안에서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단식 2주쯤 지난 어느 날 구치소로 면회를 간 나에게 "공사가 중단되기 전에는 절대로 단식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의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 앞에서 "몸을 아껴야 한다"는 나의 충고는 아무 힘이 없었다.

강정에서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힘을 보태고 있는 조성봉 영화감독이 전하는 그의 심정은 더욱 치열하다.

"내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많은 글과 말을 던져 놓고 돌아선 뒤엔 관심을 안 가진 게 너무나 많은 거야. 이제는 진짜 온전함으로 가고 싶은 거예요. 그 고민의 막다른 지점에 해군기지 결사반대에 얼마나 내가 충실할 것인가가 있는 거예요."

그는 고향땅 제주에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막는 데 '온전함'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더 이상 영화평론을 하듯 말이나 글로 활동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목숨을 걸었다는 말이다.

해군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야 5당과 제주사회협약위원회, 제주도지사의 공사중단 요청도 무시한 해군이 양윤모의 단식쯤은 눈에 밟히지 않을 것이다. 공사차량을 몸으로 막아낸다 해도 간단히 들어내 감옥에 처넣으면 될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구럼비 바위를 시멘트로 덮어 해군기지를 기정사실로 만들어놓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엉망으로 이루어진 행정절차와 해군이 전략적으로 주민간의 갈등을 조장한 문제 등에 대한 야 5당 진상조사단의 조사가 진행중이다. 주민들과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거기다 개정을 추진중인 국방개혁법에 따라 해군기지의 명분도 잃었다. 무엇보다 지금 한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다. 우주보다 무거운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면서 부르짖어야 할 안보는 없다.

▲양윤모

이제 양윤모의 절규를 다시 듣는다.

"문제의 본질은 해군이 해군기지의 필요성에 대해 주민들을 설득시키지 못하면서도 강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민들을 얕잡아보고 함부로 대하죠. 민주주의의 문제입니다. 힘없는 이들의 삶을 파괴하며 얻으려는 '더러운 안보'에 반대합니다."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43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