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합니다](49)김순이 문화재감정위원·시인이 추천<br>-'조정철과 홍윤애의 사랑'

[추천합니다](49)김순이 문화재감정위원·시인이 추천<br>-'조정철과 홍윤애의 사랑'
"그들 만큼만 사랑하라"
  • 입력 : 2011. 07.19(화)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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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애 묘비 탁본

제주역사속 극적 요소 갖춘 실화
대역죄인과 평민의 열정적 만남
광채 발하는 비극의 산문화 작업

1972년 2월 19일 제주도의 한 신문에 결혼 광고가 실렸다. 결혼할 테니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결혼하였습니다'하고 이미 결혼했음을 밝히는 글이었다. 지금은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인 김순이씨와 고인이 된 '오름나그네' 김종철씨가 낸 이 광고를 보고 이들의 반쪽만을 아는 사람들은 '3개월이면 끝난다', '6개월을 넘기지 못한다'고 내기를 걸기도 했다.

김순이씨는 "20살 연상에 가진 것이라곤 열정과 순정밖에 없던 가난한 신문기자와 딸의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알리기 위해 광고를 냈다"고 회상한다. 그런 그가 제주에 실제 있었던 조정철과 홍윤애의 비극을 소설로 쓰기 위해 구상 중이다. 후세에 전하기 위해 민속학자의 눈으로 역사의 행간을 읽어내고 시인의 감수성으로 상상력을 동원해 정리한 김순이식 이야기의 얼개다.

유서 깊은 명문가의 자손으로 대과에 급제했지만 27살이 되던 1777년 정조 임금 시해 역모사건에 연루돼 제주 귀양길에 오른 청년 조정철. 부친상을 마치기도 전에 시작한 유배생활 한 달 만에 관아의 노비로 내쳐진 부인 홍씨가 자진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대역죄인인지라 모두가 피하던 그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글을 읽고 쓰는 것뿐이지만 그마저도 가로막혀 자결과 병사의 기로에 섰을 때 이웃에 살던 처녀 홍윤애가 다가온다.

감시의 눈을 피해 사랑에 빠져 딸을 낳은 지 두 달 되던 때 당파가 다른 김시구가 조정철을 제거하기 위해 제주목사로 부임해온다. 갖은 모략을 꾸미던 목사는 조정철과 내통하던 홍윤애를 잡아들여 장 70대를 치며 고문한다. 잡혀가기 전 "공의 삶은 나의 죽음에 있다"던 홍윤애는 결국 목을 매고, 억울한 죽음은 조정에까지 전해져 연인의 목숨을 구한다.

"치열한 당쟁에 의한 권력찬탈을 노린 반역, 억울하게 연루된 죄인의 유배, 절해고도에서의 목사의 권력 악용과 정적제거의 시나리오, 민심동요와 어사 파견 등이 골고루 얽혀 있는 홍윤애의 죽음은 역사성이 매우 강렬한 사건이었지요."

이후 제주도와 전남에서 유배생활을 이어가던 조정철은 우리나라 유배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30년 귀양살이 끝에 석방된다. 이어 관직에 올라 환갑 나이에 제주목사로 자진 부임한 뒤 홍윤애의 무덤을 단장하고 '홍의녀지비'라는 비석을 세운다. 조선시대 사대부가 여성을 위해 세워준 유일한 그 시비는 우리 국문학사의 한 장르인 유배문학의 꽃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김순이 위원

"그들의 사랑은 비극적 결말과 제주지방의 색채, 권모술수, 불우함, 청년기부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의 모든 요소를 갖춘데다 도덕적 하자도 없어요. 게다가 유배생활이 끝나고 복직되면 여인은 물론 그 사이에서 낳은 자식까지 버린 다른 많은 사대부와 달리 조정철은 유배지로 돌아와 부끄럽고 어려웠던 과거를 정리할 줄도 알았어요."

"죽을 때까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인생은 너무 불쌍하다"는 그는 내년부터 기필코 할 일 가운데 하나로 이 이야기의 소설화를 택했다. 2만자 분량의 '조정철 목사의 숨결을 찾아서'(제주도 통권 109호)는 그 작업을 위한 일종의 전초전 격인 산문이다. 마흔이 넘어 시인으로 등단해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의 그가 이 이야기를 첫 소설작품 소재로 선택한 것은 "외형은 비극적이지만 광채를 띠는 비극"이고,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것은 "그들만큼만 사랑하라"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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