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합니다](54)김상오 제주농협지역본부장이 추천한 이사람<br>-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

[추천합니다](54)김상오 제주농협지역본부장이 추천한 이사람<br>-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
제주땅에서 희망 일구기 반백년
  • 입력 : 2011. 08.30(화) 00:00
  • 문미숙 기자 m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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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그린치 신부는 반세기 이상을 제주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사진=한라일보 DB

○…황무지 개척 농촌공동체
○…가난한 사람에 따뜻한 손
○…의원·목장 설립 사랑실천

아일랜드 태생의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83·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고문). 두 번째 명예제주도민으로 '임피제'라는 한국이름을 가진 그는 반세기 이상을 제주사람들과 더불어 황무지를 일구며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민 이로 잘 알려져 있다.

제주를 광풍처럼 휩쓸었던 4·3과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정신적인 상처와 경제적 피폐함만이 가득한 제주땅을 밟았던 스물다섯의 사제는 바람의 섬 제주에서 인생 황혼기를 맞았다. 그리고 반백년 이상을 제주사람들 속에서 살아온 그의 무한한 제주사랑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맥그린치 신부를 추천한 제주농협지역본부 김상오 본부장은 1960년대 초반 농촌경제 부흥과 농촌계몽을 위해 중산간인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에 성 이시돌목장을 만들어 어렵사리 하나씩 기적을 만들어간 그의 삶은 제주농업사에서도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쟁 직후 보릿고개의 고통을 견뎌야 했던 시절, 맥그린치 신부는 어렵사리 한림에 성당을 짓고 선교를 시작했다. 또 마을사람들에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황무지였던 한림읍 금악리에 목장을 만들어 양과 젖소를 키우면서 주민들에게 축산기술을 배우도록 했는데, 이것이 이시돌목장 설립의 시초이자 한림지역 축산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맥그린치 신부는 또 농민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배합사료공장을 만들어 한림지역 양돈농가에 저렴하게 공급하기도 했다. 또 목장에서 키우던 양의 털을 이용해 옷을 짜는 한림수직을 설립해 젊은 여성들에게 일자리도 만들어줬다. 가난 때문에 비싼 이자로 돈을 빌렸다가, 혹은 '계'가 깨져 자살하는 농민들이 안타까워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어 저리로 돈을 빌려준 것도 맥그린치 신부다.

"맥그린치 신부는 농어촌 지역의 소외계층 복지에도 누구보다 관심을 가졌다. 1970년 아일랜드 수녀를 원장으로 모셔와 한림에 성이시돌의원을 개원해 제주시 애월, 한림, 한경 등 제주시 서부지역 주민들에게 병원치료의 길을 열어주었다."

▲김상오 본부장

애월이 고향인 김 본부장 역시 어릴 적 몸이 아파 성이시돌의원을 찾아 치료받은 기억이 있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제주에는 몸이 아파도 치료받을 수 있는 변변한 의료시설이 드물었다. 이시돌의원은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농어촌 주민들에게 병원 문턱을 확 낮춰주는 역할을 했다. 극빈층에겐 병원비도 받지 않았다."

제주도문화상을 비롯해 아시아에서 가장 권위있는 필리핀 막사이사이상, 5·16민족상, 대한민국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한 맥그린치 신부. "신부가 제주에서 가난한 농민들에게 희망을 전하고자 펼친 노력들은 어려운 이들을 향한 '사랑의 실천'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김 본부장은 맥그린치 신부 기념관 조성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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