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유기농업 1세대로 국내 최초로 유기농단체인 '정농회'의 초대 회장을 지낸 오재길씨는 친환경적 농법으로 만든 건강한 먹거리만이 사람들의 정신과 건강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사진=강경민기자
○…'생명농사' 유기농업 1세대○…사재 20억 헌납해 재단 설립○…후계자 양성 등에 온힘 쏟아
'우리는 성장경제에 희생된 농업정책을 반성하면서 친환경적인 농업생산방식을 개발해 갈 것이다… 이 일을 제주도에서 시작하고 전국적 운동으로 확산하는 근거지를 여기에다 만들 것이다'
(재)제주생명농업 설립 취지문의 일부분이다. 유기농업을 통해 제주에서부터 '생명운동' 바람을 일으키고자 한 설립자 오재길(91)씨의 신념이 묻어있다.
오씨는 이 땅에 처음 유기농업의 씨앗을 뿌린 유기농업 1세대다. '생명농사'를 기치로 내걸고 1976년 창립된 국내 최초 유기농단체 '정농회'의 초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사재 20여억원을 헌납해 표선면 가시리 9만9000㎡ 부지에 (재)제주생명농업을 설립, 상임이사로 활동하며 친환경 유기농법 개발과 후계자 양성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를 만나러 간 자리에는 제주대학교 생명자원과학대학 송창길(59)교수가 함께 했다. 오씨를 추천한 이다. 제주대 친환경농산물인증센터 소장도 맡고 있는 송 교수는 (재)제주생명농업 이사로 오씨와 인연을 맺었다.
"삶 자체가 친환경적인 분입니다. 친환경유기농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죠. 그 신념이 자신의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제주생명농업을 만들게 한 겁니다." 송 교수가 오씨를 높이 사는 이유다.
오씨는 추자면 신양리 출신이다. 18살때 고향을 떠나 평양, 서울, 양주 등지를 전전하며 유기농사를 짓다 9년전 고향 제주로 돌아왔다. 노후의 안식처로 제주를 선택한 이유는 '생명농업'으로 제주를 바꾸기 위해서다.
"화학비료와 농약사용이 얼마나 해악한지 사람들이 아직도 모른다"는 오씨는 친환경적 농법으로 만든 건강한 먹거리만이 사람들의 정신과 건강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제주농업이 모두 '생명유기농업'으로 바뀌어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게 농산물을 먹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지금은 친환경농업에 대한 농민과 소비자의 인식이 많이 향상됐지만 처음 유기농업을 시작했을 땐 따가운 주변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1976년 당시는 정부의 식량증산 정책으로 화학비료나 농약사용이 권장됐지요. 그런데 증산은 뒷전이고 바른 농사를 짓겠다는 우리를 주변에서 좋게 보질 않았어요. 정보원들이 거의 매일 쫓아다니고 미친놈 취급받기 일쑤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많이 변했어요." 오씨의 회고다.
▲송창길 교수
송 교수도 동의했다. "정부나 제주도에서도 친환경농업에 대해 굉장히 우호적으로 바뀌긴 했지요. 하지만 지원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많이 아쉽죠."
1시간 넘은 대화의 끝을 송 교수가 장식했다. 그는 "친환경농업을 통해 농민들은 생명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친환경농산물을 찾는 이유는 대부분 건강을 위해섭니다. 하지만 친환경농업은 땅도 살리는 겁니다. 외국에선 친환경농업을 건강만이 아닌 땅, 더 나아가 지구를 살리는 생명운동의 한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한국인들의 접근방식, 철학도 이젠 바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