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호회 최고](5)시낭송 모임 '파란나비'

[우리 동호회 최고](5)시낭송 모임 '파란나비'
"작은 날갯짓으로 밝은 세상 만들어요"
삶의 '바닥' 쳐본 이들에게 꿈을 전파하는 희망 전도사
  • 입력 : 2012. 02.07(화)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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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사회를 꿈꾸는 '파란나비' 회원들은 다문화가정센터와 노인복지센터를 찾아 시낭송 봉사활동을 하면서 '시(詩) 치유'에 도움을 주고 있다. /사진=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꿈 많은 제 나이 또래 아이들과 달리 A군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제주대학교병원 주간보호센터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던 어느 날 정호승의 시 '바닥에 대하여'를 접한 그는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매주 1회 시낭송 봉사활동을 위해 찾아와 시를 알려준 김향심씨에게 삶의 희망을 갖게 됐노라고, 다시 공부하겠노라고 털어놨다. 처음 김씨를 만났을 때 시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며 냉랭하게 대했던 A군은 올해 고 3이 됐다.

▲김향심 회장

시낭송 모임 파란나비는 제주시 노형동주민센터 시낭송 교실에서 만난 수강생들이 지난해 3월 결성한 봉사단체다. 당시 강사였던 김향심씨가 회장을 맡아 매주 1회 모여 시낭송을 하고, 매월 둘째주와 셋째주 화요일에는 제주다문화가정센터와 연동탑365노인복지센터를 찾아 시낭송을 통한 이른바 '시치유'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낭송이 그 자체로 치유가 될 수 있는 것은 시가 위로와 희망을 주고,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80이 넘은 노인복지센터 노인 중에는 이들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도 있다. "처음엔 노인들이 시를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시낭송 봉사활동을 갈 때마다 '어떻게 그렇게 꼭 맞는 말만 하느냐'는 반응이 돌아와요." 시치유를 경험한 노인들은 이후 미술치유 시간에는 시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평소에도 시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회원들의 얼굴엔 한결같이 웃음이 가득하지만 시낭송 모임을 하기 전엔 대부분 '바닥'을 경험해봤다. 모임 총무를 맡고 있는 이원순씨는 창 밖만 쳐다봐도 눈물이 나고 삶의 의욕을 상실할 정도로 갱년기 우울증이 심각했다. 회원 장재옥씨는 제법 잘 나가는 웨딩숍을 운영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살아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고, 밖에서는 남 앞에 나서지도 못할 만큼 수줍음도 많았다.

"나만 힘들고 나만 우울한 줄 알았어요. 자식도, 남편도 위로해주지 않았는데 시가 위로해주더라고요. 아마 시를 접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정신병원에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회원들은 시를 접하고선 정서적 안정을 찾고, 표현력도 풍부해졌다. 이전엔 소극적 삶을 살았다는 회원이 시낭송 교사로 자원봉사하고, 또 다른 회원은 나가는 모임에서마다 시낭송을 하겠다고 자청해 모임의 격을 높여줬다는 평가를 이끌어낸다.

"시인이 가장 정제되고 빛나는 언어로 기쁨과 슬픔을 표현해낸 시를 낭송하는 것은 낭송하는 이나 듣는 이의 감정을 최고조로 이끌어내 아픈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지요." 듣는 대상에 맞춰 선정한 시를 낭송이라는 기법을 통해 들려주는 이들이 모임 이름을 '나비효과'에서 연상해 파란나비로 지은 것은 작은 날갯짓이 밝은 세상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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