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

돌들이 끄덕였는가, 꽃들이 흔들렸다네
이지누의 폐사지 답사기-전북편
  • 입력 : 2012. 08.17(금)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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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음양 모두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결코 그중 어느 하나가 다른 어떤 것에 비해 우월하거나 우선하지 않는다." 저자가 폐사지 답사기 1권 '마음과 짝하지 마라, 자칫 그에게 속으리니'에서 한 말이다. 화려한 볼거리가 드물더라도 결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폐사지의 매력을 설명하기 위해 '음'의 미학을 끌어들인 것이다. 모두가 화려함만을 좇는 세상이어서인지 저자의 통찰력에 더욱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번 책에서 다루는 전라북도의 폐사지들 역시 저마다 상서로운 음의 기운을 특징적으로 머금고 있다.

"묘하게도 전라북도의 폐사지를 돌아볼 때는 다른 여느 지방의 순례와는 또다른 기분에 휩싸인다. 더욱 쓸쓸하기도 하고 깊은 고독에 휩싸여 말을 잃기도 한다. 그것은 전라북도의 폐사지가 뿜어내는 치명적인 매력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자신을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전라북도 폐사지의 분위기가 그러한 것은 폐사지에 떠돌고 있는 사연들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독특한 뉘앙스를 뿜어내는 전북의 절터 여덟 곳을 답사한 기록이다. 남원 만복사터에서 시작해 남원 개령암터와 호성암터, 완주 경복사터와 보광사터, 고창 동불암터, 부안 불사의방터와 원효굴터로 이어진다. 때로는 시적인 감상으로, 때로는 설화와 전설과 민담으로, 때로는 불교와 관련된 역사적 사료로 절터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보통 관광객의 눈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전북 절터의 진면목을 순례자의 맑은 눈으로 또렷하게 부각시킨다.

절터는 버려진 장소다. 예전에는 불사를 드리는 사람들로 흥청거렸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이다. 그것은 외로움과 고독을 뜻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즈넉한 고요를 뜻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절터는 인간 위주의 생각에서 벗어나 자연이 들려주는 진실의 소리에 새삼 주목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전북의 절터에서 마주치는 고요는 특별하다. 전북만의 독특한 미륵사상 아래에서 인지돼 순례자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참회의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불자와 유자들의 시는 물론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에서 '혼불'에 이르기까지 고대와 중세, 현대를 넘나들며 풍성한 이야기로 절터를 채워놓는다. 절터의 깊이에 넒이까지 더하기 위함이다. 옛적에 법석이 펼쳐졌던 절터가 다시 소생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염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지누 지음. 알마.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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