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디쓴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축소판

쓰디쓴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축소판
오에 겐자부로의 평화 공감 르포 '오키나와 노트'
  • 입력 : 2012. 08.31(금)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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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총칼도 없던 평화 공동체 류큐왕국은 일본에 편입돼 오키나와 현으로 탄생한다. 메이지정부의 류큐처분관 마쓰다 미치유키는 수행원 30명과 순사 160명, 보병 400명을 거느리고 왕궁 슈리성으로 쳐들어가 왕국 체제를 폐지하고, 류큐의 국왕 쇼타이 왕을 강제로 도쿄에 압송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흘러 오사카에서 박람회가 열렸을 때 일이다. 학술 인류관이라는 부스에 오키나와 여성 두 사람이 '진열'됐다. 그녀들은 곰방대와 야자수 잎 부채를 들고 오두막에 앉아 있었고, 채찍을 든 남자가 여인들을 '이놈'이라고 부르며 설명했다고 한다.

오키나와는 에메랄드빛 산호바다와 야자수, 맹그로부 숲으로 유명한 남국의 휴양지다. 세계 최고의 장수 지역인 이 섬은 오랫동안 '시마우타(島歌)'라고 불려온 전통 음악과 아무로 나미에를 비롯한 '오키나와 팝'으로도 유명하다. 평화로운 민요와 노래 가사는 오키나와의 비극적 역사를 서정적으로 담아내 전율할 정도라는 평가도 받는다.

그런가 하면 오키나와는 동중국해와 북태평양을 가로질러 지정학적으로 중국 대륙을 향해 부챗살처럼 펼쳐진 미국 태평양함대의 전진기지이기도 하다. 최근 언론에 자주 언급되는 동북아시아 최대의 미군기지인 가데나 공군기지와 후텐마 해병대 기지(MCAS Futenma)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 해병대는 한반도 유사시에 미 해병대의 비행기 300대를 후텐마 기지에 배치해 작전에 들어가기로 1996년 일본과 합의했다. 오키나와에는 일본 전체 미군기지의 75%가 들어서 있으며, 섬 전체 면적의 20%가 미군기지에 해당한다.

이 책은 1969년 1월, 오키나와 반환운동에 평생을 바친 후루겐 소켄 씨의 장례식에서 출발한다. 서른여덟이라는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16년간 고향 본가에서 하룻밤도 보내지 못한 이 젊은 활동가에 대한 추도글이 책의 프롤로그가 된다. "죽은 자의 참담한 분노를 공유할 뿐이다. 그리고 그 분노의 창끝이 우리를 향하게 해야 한다. 그래도 후루겐 소켄 씨의 진혼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올해는 일본의 패전으로 미국에 점령됐던 오키나와가 일본으로 반환된 지 40년이 되는 해다. 핵무기를 포함한 군사기지의 섬, 일본과 일본인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 전쟁의 현장이 된 외로운 섬 오키나와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나섰다. 여러모로 제주도와 비슷한 오키나와의 근현대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질문을 품게 만든다. 이애숙 옮김. 삼천리.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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