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귀에 익은 큰할망, 설문대할망은 제주도를 창조했다고 전해 내려오는 여신이다. 지역에 따라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조금씩 다르고 불리는 이름도 제각각이지만 제주도를 대표하는 신화 속 인물이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창조신이기도 하다. 그런 설문대할망이 돌아왔다. 그것도 짤막한 구전이 아닌, 한 권 분량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여러 가지 사안으로 뒤숭숭한 제주 섬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 발간된 '설문대할마님, 어떵 옵데가?'는 지금까지 알려진 설문대할망 신화의 틀을 벗어난다. 기존 거녀(巨女)로서의 기이한 행적에 치중했던 신의 모습이 아니라 설문대할망의 입으로 자신이 겪었던 제주 섬에서의 일과 제주 사람들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놓는 형식이다.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면 신인(神人)으로서의 품격과 능력뿐만 아니라 제주 사람의 고난과 팍팍한 환경을 애처롭게 여기며 인간들을 아끼고 사랑한 어머니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에피소드들을 해체해 확장하고 그것에 얽힌 설문대할망의 애정과 인간적인 고뇌를 본풀이의 형식을 빌려 풀어내고 있다.
총 10장으로 이뤄진 이 창작본풀이는 기본적으로 제주어로 쓰여 있어 사라져가는 제주어의 잔치라 할 만하다. 그리고 그 맞은쪽에는 표준어로 풀어써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비범한 능력을 갖췄음에도 인간의 위에서 통치하려 하지 않고 인간을 품으려 했던 설문대할망의 이야기를 다시 세상에 내놓고자 한 저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오랜 시간 저자 곁에서 맴돌던 설문대할망의 이미지에 대한 헌사를 넘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예의와 그렇게 같이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며 그 시작을 찾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할망을 살려낸 것은 아닐까?
저자는 지금도 바람을 타며 제주 섬을 맴돌고 있는 할망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기적인 인간 군상이 아니라 남을 배려할 줄 알았던 선한 '벨장제'의 후손이 되기를 독려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제주 사람들이 모여든 제주굿판에서 설문대할망본이 구송되기를 꿈꾸며 일독을 권한다.
저자 이성준은 제주 조천 출신으로 국어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고등학교 교사로 20년간 재직하다 퇴직한 뒤 창작과 연구에 빠져 있다. 시집 '억새의 노래', '못난 아비의 노래', '나를 위한 연가'와 소설집 '달의 시간을 찾아서'가 있다. 9일 오후 6시 각 북카페에서 출판 기념회가 열린다. 각. 1만5000원. 문의 725-4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