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음력 1월 13일이 되면 제주시 송당리 본향당에는 주민과 마을을 떠난 사람들까지 찾아와 가족의 무사안녕과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면서 당굿을 진행한다. 사진=한라일보 DB
당신의 원조인 백주또 할망이 좌정
400년전 설촌부터 광산김씨 '상단골'
매년 음력 1월 13일이 되면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어깨에 구덕을 매고 본향당으로 향하는 아낙들의 모습을 볼 수있다.
이들은 '금백주할망' 또는 '백주또'라고 불리는 여신이 좌정한 본향을 찾아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올리고, 심방을 모셔와 당굿을 지낸다.
▶송당리 본향당의 탄생=강남 천자국에서 태어난 백주또는 천기에 따라 제주도 송당으로 찾아와 소로소천국과 백년가약을 맺는다. 자식이 불어가자 부인은 남편에게 농사짓기를 권한다. 어느 날 밭을 갈러 가는 남편을 위해 백주또는 밥과 국 열여덟 동이를 소길마에 걸어 두고 온다. 소로소천국이 밭을 가는데 태산절 중이 지나가다 점심을 청하기에 허락한다. 그러나 그 중은 밥과 국 열여덟 동이를 모조리 먹고 가버려 소로소천국이 밭 갈던 소와 남의 소까지 잡아먹고 만다. 백주또는 '소도둑하고는 못산다'면서 이혼한다. 이혼한 사이 낳은 아들이 세 살 나자 백주또는 아들을 아버지에게 보이기 위해 소로소천국을 찾아간다. 그러나 아들은 소로소천국 무릎에서 수염을 잡아당기는 등 버릇없이 군다. 화가난 소로소천국은 아들을 석갑에 담고 동해바다로 띄워보낸다. 아들은 용왕국에 가서 세변을 평정하고 그 곳에서 하사하는 큰 벼슬을 물리치고 송당으로 돌아온다. 세살 때 석갑에 띄워보낸 아들이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를 내면서 돌아오자 겁에 질려 도망가던 어머니는 죽어서 웃손당 당오름 당신이 되고, 아버지는 알손당 고부니를 당신으로 좌정했다. 송당리 본향당에 얽힌 설화이다.
▶송당리 당굿=백주또와 소로소천국이 결혼해 아들 8명과 딸 28명을 낳았는데, 그 자손들이 고루 뻗어 제주도 전역 368개 마을의 당신이 되었다고 한다. 마을제는 마을사람들이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신문(神門)을 열어 달라고 비는 궷문열림으로 시작된다. 굿하는 장소와 시간을 고하고, 굿하는 이유와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알리는 초감제와 신궁문(神宮門)을 여는 군문열림, 신이 내려오는 길이 깨끗하도록 나쁜 기운을 없애는 새도림을 한 후에 옥황상제와 백주또신을 초청하는 신청궤를 행한다. 이렇게 맞이한 신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춤과 노래를 하는 풍니놀이와 마을의 운수를 점쳐보는 도산받음을 하고, 마을의 액운을 막고 행운을 비는 액막음과 마지막으로 초청해 온 신들을 돌려보내는 도진의 순서로 진행된다.
송당리는 '당신앙의 불휘공(뿌리)'가 되는 성스러운 장소로써 이곳의 마을제(제주특별자치도무형문화재 제5호)는 제주에서 행해지는 마을제 가운데 대표라 할 수 있다.
한편, 송당리 본향당은 여성신을 모시고 있지만 굿은 남자 심방이 한다. 지난 2003년 7월 13일 마불림제부터 정태진 심방이 송당리 메인심방으로 굿을 집전하고 있다.
▶상단골 광산김씨=모든 굿이 마찬가지이지만, 당굿이 매년 사라지지 않고 열릴 수 있는데는 단골이 매해 당을 찾기 때문이다. 학자들마다 제주의 굿은 고대 원형을 가장 잘 보존된 형태로 남아 있다고 평한다. 송당리 본향당에서 열리는 당굿을 찾으면 왜 학자들이 그렇게 평하지는 금새 알 수 있다. 70~80대 이상의 노인에서부터 30~40대의 젊은 여성들이 이곳을 찾아 가족의 무사안녕을 기원한다.
마을제인만큼 마을 주민들의 풍요와 안녕도 기원하지만, 이는 당굿의 제관들의 몫이다. 우리의 어머니의 관심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가족의 무사안녕이다.
이것이 당굿이 원형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는 비결(?)일 것이다.
송당리 본향당의 단골중 으뜸은 광산김씨다. 단골은 상·중·하로 나뉘는데 지금으로부터 약400년전 광산김씨가 들어와 설촌한 마을인만큼, 이들이 상단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광산김씨의 집성촌인만큼 광산김씨의 집성촌인만큼 마을에서 큰 일을 맡아보는 이장, 노인회장, 부녀회장 등이 광산김씨 이거나 이 집안의 부인들이 도맡아 한다. 심방을 모시고,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등의 진행도 이 마을 광산김씨 종가가 맡아서 한다.
'당오백 절오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제주에는 오래전부터 행해져 왔다. 하지만 이제는 원형을 보존한 채 열리는 당굿의 수조차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 보존되는 송당리 마을제에는 매년 학자들과 당굿을 기록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마을주민들은 이들에게 자신들이 즐겨먹었던 '꿩칼국수'를 대접한다. 이를 활용해 송당리와 제주전통문화연구소는 지난 2004년 '1만8000신들의 본향, 불휘공 송당마을 신화축제'를 개최했었다.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제주고유의 당굿문화를 지켜내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전문가 의견]신당의 뿌리, 웃손당 당오름 금백주당의 당굿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는 제주 당신의 부모신이 좌정하고 있는 당신앙의 메카(聖地)이다.
예로부터 심방이나 마을 사람들은 송당리의 본향당신인 남편 신 '소로소천국'과 처신 '금백주'를 당신의 원조이며, 당 신앙의 뿌리라는 의미에서 "손당(松堂里)은 제주도 본향당의 불휘공(뿌리)이주"하며 설명을 시작한다. 이 '손당'이 구좌읍 송당리이며, 송당리 당오름에는 '금백주할망' 또는 '백주또'라고 부르는 여신이 마을 본향당신으로 좌정하고 있다. 신화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여신은 오곡의 종자와 송아지 망아지를 가지고 서울에서 제주에 내려온 '농경신'이다. 이 여신이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며 떠돌아다니던 사냥꾼 '소로소천국'과 부부 인연을 맺고 살림을 시작하면서부터 송당리는 마을이 설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부부신의 아들 딸들이 줄이 뻗고 발이 뻗어 다른 이웃 마을의 당신이 되었다는 본풀이가 '송당리 당본풀이'이다. 이와 같이 '송당리 당본풀이'는 두 신이 결혼하여 자손이 번성하는 마을 형성의 신화다. 즉 한라산에서 솟아난 소로소천국(男神)과 육지에서 들어온 여신 금백주(女神)가 결혼을 한다. 두 신의 결혼은 농경사회의 토대가 형성되는 과정을 나타낸다.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 아니라, 마을형성기 여러 혈연 집단들의 정주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신들의 결혼을 혼인제도의 한 형태로 본다면, 외혼제·부방거주제로 볼 수 있으며, 그러한 시대상을 신화 속에 반영하고 있다.
신화에서 결혼은 가정의 성립을, 가정의 성립은 정착생활의 시작을, 정착생활의 시작은 마을의 형성을 나타낸다. "아들 열여덟, 딸 스물여덟 낳았다"는 것은 마을의 번성, 인구의 증가 등 공동체 사회의 형성 과정에서 토착세력과 외래세력 간의 세력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어서 '송당당 본풀이'의 제2단계 구성은 부자신(父子神)의 갈등으로 추방된 자녀신들이 마을을 떠나는 모티브들을 통해 새로운 마을의 형성, 지연·혈연 조상으로 당신이 좌정하게 된 내력과 생활권·신앙권·통혼권역이 형성된 사실 등을 반영하고 있다. <문무병 제주전통문화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