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만리 제주밭담](3)제주밭담의 유형

[흑룡만리 제주밭담](3)제주밭담의 유형
닮은 듯 하면서도 각기 다른 느낌의 검은 물결 환상적
  • 입력 : 2013. 05.22(수)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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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 가득한 보리밭과 검은 돌담이 어우러진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제주시 외도동에는 보리밭 주변으로 한 줄로 쌓아올린 외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외담은 제주 밭담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유형이다. 강경민기자

지역마다 농업형태·토양·기후 달라 밭담 유형도 저마다
돌 쌓인 형태 따라 크게 한줄 외담과 두줄 겹담으로 구분
걸어 다닐 수 있는 잣길에서 선조들 지혜와 이웃 배려도

제주 밭담은 바람을 걸러주는 '거대한 그물'이다. 도 전역을 수놓은 현무암 물결은 바람을 막아 농토를 보호하고 농작물을 길러냈다. 경작지의 경계를 표시하고 우마의 침입을 막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제주농업의 흔적인 셈이다.

제주도 어디를 가나 농경지를 빙 두르는 돌담을 만날 수 있다. 대개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이 한 줄로 이어지는 모습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생김새의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지역마다 농업환경이 달리 나타나는 화산섬 제주에선 지역적인 특성이 밭담의 형태를 좌우하기도 한다.

▶외담·겹담으로 나뉘는 밭담

밭담은 돌이 쌓인 형태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외담과 겹담이다.

외담은 돌의 크기나 모양에 상관없이 한 줄로 쌓아올린 돌담 양식이다. 잡담이라고도 불리는 외담은 제주 밭담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돌을 쌓아 올린 모습이 엉성해 보이지만 강한 바람에도 쉬이 무너지지 않는다. 바람의 특성을 반영해 쌓아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외담은 돌담을 쌓은 뒤 한 쪽에서 흔들었을 때 담 전체가 흔들려야 한다고 한다. 바람결을 따라 유연하게 흐르기 때문에 거센 바람에도 안전할 수 있는 것이다.

겹담은 돌을 두 줄로 쌓은 모양새로 접담이라고도 한다. 안팎 두 줄을 큰 돌로 쌓고 그 사이에 잡석을 넣어 완성한 담이다. 다른 경작지에 비해 돌이 많이 나오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정효 제주대학교 강사는 "한림읍 귀덕리의 경우 농지에 워낙 돌이 많아 대부분의 밭담이 겹담 양식을 취하고 있다"며 "이러한 사례로 짐작해 봤을 때 농경지에서 나오는 많은 돌을 지속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폭이 넓은 겹담에 포함되는 '잣벡담'도 경작지에서 나오는 돌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돌의 양이 워낙 많다보니 먼 곳으로 치우지 못하고 옆 밭과의 경계를 구분짓는 돌담에 의지해 쌓은 것이다. 사람들이 위를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어 '잣길'이라고도 불린다. 비가 많이 올 때 농작물을 돌보러 가는 과정에서 통행로 역할을 하기도 하고, 도로에 인접한 밭에서 맹지(진입로가 없는 밭)로 드나드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선조들의 지혜와 이웃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이 외에도 잡굽담이라는 형태가 있다. 담의 아랫부분부터 약 30~60cm까지 작은 돌로 쌓은 다음 그 위에 큰 돌로 쌓은 담이다. 작은 돌 위에 큰 돌을 쌓아올리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폭을 유지하며 쌓아 올린 모습을 볼 수 있다.

▲겹담의 하나인 잣벡담. 강경민기자·제주자치도제공

▲담의 아랫부분에는 작은 돌을, 그 위에는 큰 돌을 쌓은 잡굽담 모습. 해안지역이냐 아니냐에 따라서도 담을 이루고 있는 돌의 모양이 달라 밭담이 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올망졸망한 둥근 돌로 이뤄진 조천 해안지역 밭담.

▲각진 돌로 쌓은 선흘지역 밭담.

▶지역마다 다른 밭담 모습

작은 섬 지역이지만 제주의 농업환경은 의외로 복잡하다. 여러 시기에 걸친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토양과 기후요소의 지역적 차이로 인해 지역마다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나의 지역단위로서 제주 농업을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지역에 따라 밭담의 유형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승진 제주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제주의 토양은 크게 화산회토와 비화산회토로 나뉜다. 지역마다 땅의 특성이 달라 밭담의 모습도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밭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담을 이루고 있는 돌의 생김새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주변 지형지질에 따라서도 돌담의 형태 변화가 나타난다.

강성기 월랑초 교사는 "검은 현무암으로 쌓인 밭담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제주지역 군데군데 특징있는 돌로 쌓인 돌담이 발견되기도 한다"며 "조면암 형질의 산방산이 있는 사계리에는 조면암으로 만들어진 돌담이, 성산일출봉이 만들어지면서 퇴적층이 형성된 신양리에는 퇴적암으로 쌓인 돌담이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밭담을 형성한 돌의 모양이 농경지 주변 지질에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해안지역이냐 아니냐에 따라서도 돌의 모양이 달라 밭담의 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해안지역의 경우 바닷물에 의해 둥글게 다듬어진 돌을 옮겨와 쌓은 밭담을 볼 수 있다. 모서리가 둥글고 넓적한 돌을 긴축으로 앞뒤로 해 쌓아올려 돌들 사이의 접촉 면적이 넓어 틈새가 거의 없는 게 특징이다.

중산간 저지대는 돌담을 이루는 돌들이 거의 직각형태를 보이고 있다. 돌의 부피도 해안가보다도 큰 편이다. 모서리가 각이 진 돌들로 쌓아진 돌담의 경우에는 돌과 돌 사이의 접촉 면적이 크고 긴축을 앞뒤로 해 쌓고 있다. 중산간 고지대에서는 각이 진 돌과 모서리가 둥근 돌을 함께 사용해 밭담을 쌓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지역마다 밭담의 모습이 달리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것으로 그 유형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강정효 강사는 "해안이냐 중산간 지역이냐 등에 따라 밭담의 모양에서 차이를 나타나기는 하나 해당 지역의 돌담이 하나같이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지역마다의 밭담의 생김새를 하나로 단정을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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