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중학교에 가서야 영어를 배웠다. 언제부터인지 초등학교 학생들도 영어를 읽고, 지금은 유치원, 심지어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애들도 영어를 배운다.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모르지만 이 친구들이 대학교에 갈 때쯤이면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최근 대학교육이 변화하고 있다. 각 대학마다 교양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그 중심추세이다. 교양교육의 지각변동이 시작된 곳은 미국이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2007년 교양개편을 통해 인문학과 기초과학 등의 소양을 강화하고 있다. 학생들 역시 인문학, 기초과학 등의 과목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다. 미국의 명문이라는 아이비리그의 하버드, 예일, 프리스턴 등에는 학부과정에 아예 법학, 의학, 경영학과가 없는 경우도 있다. 서양의 대학들의 교양개편의 중심에는 이렇듯 인문학과 기초과학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서양에서 인문학을 강조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최근에 더 더욱 부각되는 이유는 바로 전문인의 한계를 체득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신문지 상에 넘쳐나는 훌륭했던 분들의 부정과 비리, 감정없는 법 논리로 제 식구를 감싸는 조직들, 이에 침묵하는 언론들, 그리고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넘기려고만 하는 국민들…. 우리사회가 과연 전문지식이 모자라서 이런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그 필요성이 서양에서 제기됐는데, 지금의 우리사회에 정확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계를 느끼지도 않았는데, 미리 한계를 만드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적 추세에 흔들리는 대한민국의 사회적 현실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교양과정개편을 외국어 역량을 강화하는데 투자하는 대학도 적지 않다. 또 사람들이 인문학과 기초과학을 기피하는 이유가 밥그릇 크기라는 현실적 문제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인문학 교양과정의 핵심은 '읽기, 쓰기, 말하기(토론)'이다. '읽기'는 고전을 읽고 이를 비판적으로 재인식하는 데에 있다. 스티브 잡스가 고전을 통해 영감을 얻은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또 영국의 대처 전 수상이 옥스퍼드에 진학하려 했을 때,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운 적이 없다는 이유로 교장 추천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쓰기는 자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고, 말하기는 상대방의 논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방식을 익히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사고를 통해 논리를 만들어간다. 세계를 이끈다는 나라를 보면 하나같이 과거에 대해 철저히 인식하고, 감성논리를 만들며 세계의 변화를 주도할 힘을 갖는다. 이 모두 '모국어'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방법론으로 이룩했다는 점에서 그 힘이 남다르다고 생각된다.
우리 역사에서 우리 방식대로 생각하고 표현한 것은 한글창제 이후라고들 한다. 그나마 본격적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것은 1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다른 언어에 비하면 '물애기' 수준인 셈이다. 세계화,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그 흐름을 따라가느라 우리 자신이 세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김새미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