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조근 풀어낸 '물미' 사람들의 삶

조근조근 풀어낸 '물미' 사람들의 삶
제주대 국어문화원 제주어센터의 '구술 자료 총서'
  • 입력 : 2013. 08.23(금) 00:00
  • /표성준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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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은 밧듸 강 일만 허난 놀 어의 엇엇어. 만날 밤 어둑우민 들어오곡 으민 나가곡. 밧듸 강 일허멍벳긔 안 살아서."(옛날은 밭에 가서 일만 하니까 놀 어간 없었어. 만날 밤 어두우면 들어오고 밝으면 나가고. 밭에 가서 일하면서밖에 안 살았어.)

제주대학교 국어문화원 제주어센터(원장 강영봉)가 제주어 구술자료 총서 5권 '제주시 애월읍 수산마을 홍진규 할머니 생애 구술-앞멍에랑 들어나 오라 뒷멍에랑 나고나 가라'를 펴냈다. 이 생애 구술 자료는 제주시 이호 마을 고순여 할머니(2008)와 제주시 용강동 권상수 할아버지(2009), 애월읍 봉성마을 강자숙 할머니(2010), 한림읍 금악리 김기생 할머니(2011)에 이어 다섯 번째다.

제주대학교 국어문화원 김순자 연구원의 채록·전사·표준어 대역으로 나온 이 책에는 수산리 '물미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는 홍 할머니(98)의 삶이 점철돼 있다. 수산리 '뱅듸가름'에서 태어난 홍 할머니는 농삿일과 자식을 돌보며 평생을 지냈다. 스무 살에 같은 마을 '동카름' 문씨 집안으로 시집와서 8남매를 키우며 희로애락을 경험했다.

책은 모두 11장으로 꾸려졌다. 마을환경과 가족관계에서부터 일제강점기와 제주4·3사건, 농사, 혼인, 출산과 육아, 장례와 기제사, 의생활, 먹을거리, 주생활, 질병과 민간요법, 세시풍속까지 제주 사람이 나고 자라고 죽고 죽을 때까지 겪어야 하는 일들이 담겼다.

"공출허영 허민, 우리 저 밧 한에 반별 너르난 반별로 허렌 허민, 딱 공출헐 거로 무꺼 놔뒁 먹을 거 엇이민 굶고 오까기 베급 탕 먹곡 하간 거 헷주게. 상방에 딱 보리 한 쉰 가마니 마흔 가마니 그땐 가멩이로 딱딱 허여근에 영 가멩이 무끄는 거 허영 무껑 딱딱 데며둬도 그걸 못 먹언. 보리도 공출허곡, 좁썰도 공출허곡게, 멘네도 공출허곡."(공출해서 하면, 우리 저 밭 많아서 반별 너르니까 반별로 하라고 하면, 몽땅 공출할 것으로 묶어놔두어서 먹을 것 없으면 굶고 살갈퀴 배급 타서 먹고 이런저런 것 했지. 마루에 딱 보리 한 쉰 가마니 마흔 가마니 그때는 가마니로 딱딱 해서 이렇게 가마니 묶는 거 해서 묶어서 딱딱 쌓아둬도 그것을 못 먹었어. 보리도 공출하고, 좁쌀도 공출하고, 목화도 공출하고.)

책 제목 '앞멍에랑 들어나 오고 뒷멍에랑 나고나 가라'는 '김매는' 사대소리의 노랫말 가운데 일부로 이랑 긴 밭의 김을 맬 때의 모습을 담고 있다. 비매품. 문의 754-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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