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역사현장 일제전적지를 가다](144)마리아나 제도 르포-(10)미·일 전쟁 기억하기

[고난의 역사현장 일제전적지를 가다](144)마리아나 제도 르포-(10)미·일 전쟁 기억하기
마리아나 결전 이후 제주도 전략적 중요성 부각
  • 입력 : 2013. 12.25(수) 00:00
  •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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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로 고독한 수녀라는 의미의 괌의 솔레다드요새. 괌은 수려한 경관을 간직한 이 곳을 정비해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만들었다. 이승철기자

수백년동안 중첩된 아픈 역사현장 정비·보존 통해 관광자원화 주목
일본,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없이 수많은 위령비 세우고 성역화
제주에서 태평양전쟁 당시 유산 무관심속 방치되는 현실과 대조적


6인승 경비행기는 사이판에서 로타로, 다시 사이판에서 티니안으로 사뿐히 비행했다. 섬을 오가는 경비행기에서 보는 남태평양의 바다는 고요함 그 자체이다.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거대한 푸른 대지라고나 할까. 마리아나 제도는 여전히 우리에게는 낯선 미지의 세계다.

그렇지만 마리아나 제도는 오래전부터 외세의 침략을 받아 더 이상 미지의 세계가 아니다. 제주도와도 무관하지 않은 역사가 섬 곳곳에 스며있다. 섬의 역사는 곧 태평양전쟁 시기 강제 징용된 한인의 아픈 역사와 관통돼 있다.

태평양전쟁의 명운을 가른 것은 사이판·티니안·괌 등 마리아나 제도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이 전장에서 일본군은 패했고 끝내 일본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미군은 거의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일본 본토를 공습할 수 있었다. 일본으로서는 본토 방어전략 수립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미군의 공습으로부터 일본 본토를 지키기 위한 작전, 즉 결호작전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제주도가 차츰 태평양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배경이다.

마리아나 제도에서 패배한 일본은 1944년 하반기부터 마쓰시로 대본영 등 주요 시설물을 지하화하기 시작한다. 이 무렵부터 일본 대본영은 제주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한인들을 마리아나 제도 등지의 전선으로 끌고 간 일제가 제주도를 전쟁기지로 만들어 일본 본토 방어에 나서려는 것이다. 이후 결7호 작전계획이 수립되고 제주도에는 약 7만5000명의 일본군이 진주하게 된다.

오늘날 제주도 오름과 해안가에 남겨진 지하갱도 등 대규모 군사시설은 이 같은 일제 침략의 산물이다. 제주도의 태평양전쟁 유산이 제주도와 한반도 차원을 넘어서 아시아 태평양 여러 지역과 관련된 세계사적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이 마타기야마에 사람 인(人)자 형태로 세운 일본군 위령비.

태평양전쟁이 남긴 유산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전쟁의 상흔은 과거의 기억속으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괌의 미군 상륙지점과 전투 장소 등을 태평양전쟁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하고, 사이판 전투를 기념하는 아메리칸메모리얼파크를 조성하는 등 역사관광자원화에 나서고 있다. 일본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로 핵폭탄을 투하한 B29발진기지인 티니안의 원폭탑재피트는 대표적 명소가 됐다. 오늘날 이 곳은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의 필수코스로 떠올랐다. 미군과 관련된 전쟁시설물은 전수조사를 하고 실태 파악에 나서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태평양전쟁 시기의 유산뿐만 아니다. 16세기부터 스페인과 미국의 지배를 받아온 괌은 수백 년 동안 중첩된 아픈 역사를 역사관광자원화하는데 눈길을 돌리고 있다. 스페인어로 고독한 수녀라는 뜻의 솔레다드요새가 대표적이다. 수려한 경관에 더해 아픈 역사 현장이 볼거리와 흥미를 더해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최근 사이판과 괌, 오키나와 등지의 전쟁유적지로 평화학습을 떠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평화학습지로 각광받는 곳이 바로 사이판 등 마리아나 제도의 여러 섬이다. 이를 반영하듯 사이판, 괌, 티니안 등지에는 우후죽순처럼 위령비가 세워진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일본군과 관련된 곳이면 어디든지 위령비를 세우고 순례하듯이 찾아 나선다.

침략전쟁에 대한 책임과 반성은 없고 피해를 강조하고 미화하다보니 현지에서는 반발이 일어나기도 한다. 괌의 마타기야마에 있는 높이 15m의 사람 인(人)자 형태의 평화기념탑의 대표적이다. 이 기념탑에 대해 미군 퇴역군인 등을 중심으로 괌에 일본군 전몰자 기념비를 세운다는 것은 이스라엘 땅에 나치의 기념비를 세우는 것과 같다는 신랄한 비판이 제기됐다.

반면에 한인들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이나 상흔은 사실상 잊혀진 역사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이판과 티니안에 위령비 2곳, 그것도 민간단체가 중심이 돼서 세워졌을 뿐이다. 제주도를 비롯 각지에서 수많은 한인이 끌려가 희생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구체적 실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제주도의 태평양전쟁 관련 유산들도 역사교훈 현장으로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정비활용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진지를 들 수 있다. 몇 년전부터 지속적으로 함몰이 진행되고 있으나 제주도와 서귀포시는 사실상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상태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알뜨르비행장 일대의 전쟁유산을 중심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으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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