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그곳을 탐하다](3)산지로

[골목, 그곳을 탐하다](3)산지로
제주사람의 수많은 희로애락 사연 싣고 유유히 흐르네
  • 입력 : 2014. 02.13(목) 00:00
  • 김지은기자 jieun@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도시 개발 붐으로 1960년대 후반부터 복개공사가 추진된 산지천은 이후 옛 모습으로 복원됐다. 현재 원도심을 살리기 위한 탐라문화광장 사업이 추진 중인 이곳의 중국 피난선 해상호도 철거될 예정이다.

도시개발 붐에 1960년대 후반부터 산지천 복개공사
옛 모습 복원 이어 탐라문화광장 추진 기대와 우려


제주시 산지천을 따라 이어지는 산지로. 그곳엔 도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으로 도로 재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왕복 4차선이었던 도로는 반으로 잘렸다. 원래 크기의 절반으로 줄어든 도로 위를 차량들이 조심스레 오갔다.

산지로는 예부터 변화가 많던 거리였다. 산지천이 복개됐다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되는 과정에서 모습을 달리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수차례 개발이 진행되면서 이래저래 말도 많았다. 제주도민들의 수많은 사연이 흐르는 길이다.

▲어릴 때 추억을 떠올리는 이수철씨.

# 산지천따라 흐르는 추억

산지로의 이야기는 산지천을 중심으로 돌고 돈다.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이들에겐 산지천이 더욱 특별하다. 현재 산지로에서 영진여인숙을 운영하고 있는 이수철(68)씨. 어릴 적부터 줄곧 이곳에 살았다는 그에게 산지천은 삶의 현장이자 놀이터였다.

이씨의 기억 속 옛 산지천은 다양한 풍경으로 남아있다. 주민들의 식수이자 생활용수로 쓰이던 샘물이 솟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1950~1960년대만 해도 상수도 시설이 잘 안 돼 있을 때야. 그러니 산지물을 떠다가 마셨고 여자들은 빨래를 하기도 했지. 동네 친구들과 장어를 잡으면서 놀던 기억도 생생해. 산지천 바닥을 파면 민물지렁이가 나왔는데 그걸 낚시에 매서 던지면 장어가 잘 잡혔어. 그걸 가져다 팔기도 했지."

육지와 제주를 잇는 산지항(제주항)과 연결되는 산지로 인근에는 크고 작은 공장이 많았다. 이씨의 기억 속에도 산지천 주변에 자리했던 등피공장, 사이다공장, 방적공장 등이 남아있다. "산지천 복개 전만 해도 차를 수리해주고 관련 부속을 팔던 산지 모터스, 정미소, 생기리(무말랭이)공장 등도 있었다"고 그가 말했다.

# 복개 전후의 변화

산지로의 모습은 복개 전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川)가 흐르던 곳이 쭉 뻗은 길이 되면서 산지천이라 불렀던 곳에는 산지로라는 새 이름이 붙여졌다. 복개 전과 복개 후, 그리고 하천을 복원한 뒤 골목의 모습은 시시각각 변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산지천 복개공사가 추진됐다. 오염된 하천을 덮어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도시 개발을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일부 구간이 복개됐다. 그 위로는 14동의 건물과 286가구 등 각종 상가들이 들어섰다. 그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주민들은 하나같이 사람 소리로 시끌벅적하던 당시의 모습을 떠올린다.

산지로는 항구와 연결돼 있어 큰 규모의 여관 등이 많았던 곳이다. 제주~완도 항로 개설과 쾌속여객선이 운항되면서 뱃길로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한 이유였다. 특히 수학여행단 등 단체관광객들의 발길이 늘었다.

이수철 씨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나 단체 관광객들이 산지로 일대에 여관이나 여인숙에 묶었다"며 "지금은 빈 건물로 남아있지만 길가에 있던 대진여관은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로 붐볐다"고 말했다.

산지천 복개는 그리 길지 않았다. 1990년 후반에 들어 구조물이 노후해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했고, 옛 모습으로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도심 속의 생태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여론이 모아지면서 일 년 내내 물이 흐르는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났다.

▲제일 높은 건물이 대진여관.

# "복개 후 상권 침체"

산지천 복원은 도심 속 생태공간으로 주목을 받았다. 제주시는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친자연환경적 생태도시의 발걸음을 내딛었다. 산지천의 복원은 전국적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됐다.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을 계획했을 당시 참고할 정도였다. 그러나 주변 상인들은 복개 이후에 인구 이동이 이뤄지면서 상권이 침체됐다고 말한다. 산지로도 예외는 아니다. 산지로의 안쪽 길로 들어가면 비어있는 건물이 곳곳에 눈에 띈다. 낮인데도 오가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 정도다. 상황이 이쯤 되니 "복개 당시가 좋았다"는 넋두리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 일대의 상권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시도는 줄곧 이어져왔다. 그러나 일시적인 이벤트성 행사가 대부분이었다.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2002년 축소 복원한 중국 피난선 해상호는 조만간 철거될 신세다. 사업비 22억 원을 들였지만 중국인 관광객 유인효과가 미미하고 탐라문화광장의 성격과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탐라문화광장 조성 사업도 원도심을 살리기 위해 행정 당국이 강구한 방안이다. 탐라문화광장이 조성되면 산지로에는 세계테마음식거리와 관광안내소 등이 들어서게 된다.

70대 주민 백모씨는 "산지천이 복원되기 전만 해도 하천이 복원되면 사람들이 더 몰릴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며 "탐라문화광장 조성으로 거리가 활성화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왕 하는 거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또 한 번 개발로 인해 변화를 맞는 산지로. 몇 년 후 이 골목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기대 반 우려 반인 주민들의 마음을 싣고 산지천은 오늘도 유유히 흐른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6153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