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愛 빠지다]한라산을 찍는 사진가 김봉선씨

[제주愛 빠지다]한라산을 찍는 사진가 김봉선씨
"평생 사진의 화두는 오직 ‘한라산’이죠"
제주와 한라산에 매료 28년전 터전 옮겨
사진으로 제주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 톡톡히
  • 입력 : 2014. 03.07(금) 00:00
  • 문미숙 기자 ms@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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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출장길에 만난 한라산의 매력에 빠져 제주로 이사와 28년동안 오르내리며 마주할 때마다 변화무쌍한 속살을 사진에 담아온 김봉선씨가 한라산 백록담 사진 앞에서 지난해 제작한 '아름다운 제주-한라산' 슬라이드쇼 CD를 들고 섰다. 강희만기자 photo@ihalla.com

28년동안 한라산을 377번 올랐다는 김봉선(67)씨. 한라산을 오를 때마다 어김없이 산행일지를 쓴다는 이 남자의 산행은 등반이 목적은 아니다. 일기예보를 꼬박꼬박 챙겨가며 한라산을 찾는 것은 마주할 때마다 변화무쌍한 속살을 끝도 없이 드러내는 한라산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다.

한라산 사진으로 국내외에 회자되고 있는 그의 고향은 충남 온양으로, 1986년 제주로 생활터전을 옮겼다. 당시 울산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그는 1984년 제주 출장길에 만난 한라산에 매료돼 모든 동료들이 기피하던 제주 근무를 지원해 가족들과 함께 내려왔다. 취미로 사진을 즐기고 있던 그는 당초 3년정도면 한라산을 담아내는데 충분하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마주할수록 새롭고 신비한 한라산은 평생 찍어도 모자랄만큼 그 존재감이 컸고, 그는 아예 제주에 눌러앉기로 작정했다. 인사철마다 제주근무를 고집한 그는 2005년 제주화력발전소에서 정년퇴직했다.

28년동안 제주에서 찍은 사진이 필름으로 찍은 게 20만컷, 디지털 사진이 10만컷쯤 된다. "90% 이상이 내 평생 사진작업의 화두인 한라산 사진이다. 나머지 사진은 외도(?)로 보면 된다."

만족할만한 순간 포착을 위해서 몇 시간을 훌쩍 넘기거나 1박2일간 기다린 적도 있고, 절벽에서 굴러떨어졌는데 구상나무에 걸려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는 그. 분류해놓은 사진들과 컴퓨터, 빔 프로젝트, 스캐너, 스크린 등 그의 집 거실은 마치 스튜디오를 방불케 한다. 그의 집은 전국에서 사진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에게 늘 열려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의 사진은 해외에서도 호평받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세븐 한국테마 사진으로 산방산과 유채꽃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선정됐다. 또 지난해 8월 CNN에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40곳을 선정해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 중 12장이 그의 작품으로 사진은 한라산, 성산일출봉, 산방산, 우도, 토끼섬 풍경을 담아낸 것들이다. 사진으로 제주 한라산과 고운 풍경들을 전세계에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그는 지난해 12월엔 그동안 찍은 사진을 추려 '아름다운 제주-한라산'이란 이름의 슬라이드 쇼 CD도 2년여의 제작과정을 거쳐 만들어 선보였다. 그가 운영하는 홈페이지(www.sun1947.com)를 보면 한라산의 사계절과 제주 곳곳의 생생한 표정을 엿볼 수 있는데, 올해부터는 회원가입 없이도 누구나 사진을 공유할 수 있도록 열어놓고 있다.

한라산 바위 틈에서 기품있는 꽃을 피워내는 돌매화서부터 선작지왓의 봄 꽃물결, 남벽에 피어난 상고대, 설원과 운해의 움직임까지 모두 매력적이지만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정상에서 마주한 일출의 감동을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꼽는 그. 여명을 뚫고 거대한 불덩어리가 마치 용암이 분출하듯 솟구치는 순간을 몇 시간째 기다리던 그는 수 백 컷을 찍고 나서 "심봤다"를 외쳤다고 했다.

한라산의 속살을 찍기를 수십 년. 한라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기후변화로 조릿대가 백록담 턱밑까지 번식하고, 군락을 이루던 한국 특산종인 한라산 구상나무는 대량 고사하면서 멸종위기에 처해 있어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평생 사진의 화두라는 한라산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인이 소중히 지키고 보존해야 할 보물로 가치를 인정받는 행복감을 맛보기도 했다.

"가끔씩 카메라를 들고 한라산에서 죽는 꿈을 꾼다"는 그는 영정사진도 장구목을 배경으로 찍은 것으로 정해놨다. 그 사진 한 장이면 '한라산에 빠졌던 사람'임을 말하기에 충분하다는 그다. 어릴 적 학교 운동회에서 한 번도 뛰지 못할 정도로 약골이었던 그에게 제주생활은 건강도 안겨줬다. "수도꼭지에 입대고 물을 먹을 수 있고, 공기 맑고, 신비로운 한라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제주는 정말 축복받은 땅"이라는 그는 앞으로도 체력이 따르는 한 한라산을 찍는 사진쟁이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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