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맹이골목을 따라 늘어선 주택 담장에는 딱지치기 하는 아이들, 목마 타고 놀던 옛 시절의 풍경이 벽화로 남아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김지은기자
제주시 일도2동 구중문·두문동 사이 두맹이골목 인구 줄고 각종 건축물 부조화로 '낙후' 꼬리표 2007년 공공미술프로젝트로 기억의 정원 거듭 골목 활기 더하기 위해선 후속 대책 마련 필요
추억은 집앞 골목을 따라 흐른다. 어린 시절 골목은 세상과 만나는 통로이자 신나는 놀이터였다. 그때 그 시절 기억은 골목 위에 머물다 추억으로 남고, 그곳의 역사가 된다.
이러한 골목의 가치를 발견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기억의정원-두맹이골목' 공공미술프로젝트도 그 중의 하나다. 걸어다니는 공간 너머의 가치를 끌어내기 위한 시도였다. 공공미술프로젝트로 골목이 새로이 변한 지도 6년여. 두맹이골목은 잘 있을까.
#낙후 지역 꼬리표
제주시 일도2동에 위치한 두맹이골목은 구중문과 두문동 사이에 걸쳐있는 곳이다. 구중문과 두문동이란 지명으로 옛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제주시의 옛 지명'(1998·제주시 발간)에 따르면 "구중에 중(重)을 쓰는 것은 아마 그곳이 높은 사람이 다니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주위의 마을을 구중동네라고 하는데 그 유래는 확실치 않다"고 돼 있다.
두문동은 구중동네의 동쪽에 있으며 돌이 많다는 뜻인 '두무니머들'이 와음된 것이다. 옛날 이곳은 나무가 없을 때 잡초를 해다가 불사르던 가시덤불과 무덤·골총 등이 얽혀 있던 동네라고 한다. 원래는 주성 밖의 공동묘지였다가 사람들이 마을을 이뤄 살게 되면서 '슬'이라는 이름이 붙고 '두문동'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 일대에 마을이 형성된 건 오래지 않았다. 구중로와 두문로는 조선시대 성동의 공동묘지 역할을 했던 곳이기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100년 안팎이다. 제주성의 해체가 이뤄지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된 것은 1960~1970년대다.
40년 가까이 이곳에 살았다는 김여옥(76)씨. 김씨는 "그 당시와 지금의 동네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좁은 길을 두고 오밀조밀 집이 모여있는 오늘날의 골목 모습이 그 당시와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집들도 많다. 건물이 새롭게 지어지고, 구멍가게 몇 개가 생겼다 없어졌다 한 것을 빼면 변한 게 없다"고 김씨가 말했다.
30~4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동네에는 언젠가부터 낙후 지역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인구가 줄면서 거리가 침체되고 각종 건축물의 부조화 등으로 인한 경관 파괴 등 문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골목 어귀에 방치된 폐초가는 주민들 사이에서 '귀신 나오는 곳' '고양이 소굴'로 불리기도 했다.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
#두맹이골목 빛보다
골목에 변화가 찾아온 건 2008년,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부터다. 일도2동주민자치위원회와 탐라미술인협회 공공미술연구회는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얻은 결과물을 가지고 제주민예총이 주관한 공공미술공모사업에 응모했다. 결과는 당선. 지역주민과 예술인들이 힘 모아 땀흘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일도2동주민자치위원장이었던 백영종(사진)씨는 골목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골목을 돌아다니며 지역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모았기에 기억이 생생하다.
백영종씨는 "주민들과 공공미술연구회 회원들이 마을을 돌며 지역에 오래 거주한 주민들을 찾아다녔다"며 "그 과정에서 '두맹이'라는 명칭을 찾아냈다. 40년 가까이 이 지역에 살았던 분에게 두맹이골목이라고 불렀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두맹이골목이란 이름의 비화다.
두맹이골목은 당시를 계기로 새롭게 거듭났다. 골목 양쪽을 따라 늘어선 주택 담장에는 친숙한 만화 캐릭터부터 딱지치기 하는 아이들, 목마 타고 놀던 옛 시절의 풍경들이 그림으로 남았다. 백씨는 "1차 프로젝트가 진행된 곳은 도시개발이 진행되지 않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며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벽화를 그려넣은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2차 프로젝트가 진행된 2009년에는 제주 지역 대학생들이 더욱 많은 벽화를 그려넣었다. 이후 2009년 12월에는 인근 3개 초등학교 학생 1500여 명이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한 벽화가 제작됐다. 두맹이골목은 그렇게 '기억의 정원'이 됐다.
#생기 되찾기까진 갈길 멀어
두맹이골목은 제주시 숨은 비경 31 중에 하나로 꼽히며 볼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골목을 거닐다보면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 누비는 도민과 관광객을 만날 수 있다. 찾는 발길이 잦지는 않지만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점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생기를 되찾기엔 갈길이 멀어보인다. 2008~2009년 진행된 공공미술 프로젝트 이후에 골목은 멈춰있다. 골목이 활기를 더하고 벽화 마을을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후속 움직임이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남 통영시 동피랑 마을은 주목할 만하다. 이곳 벽화마을은 벽화를 그리는 공공 예술에 그치지 않고 시민단체와 주민들이 시 당국의 협조를 얻어 갤러리와 공판점, 상점 등의 문을 열었다. 지역을 방문한 관광객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주민들은 그것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다. 동피랑 마을 사례는 현재의 두맹이골목에게 시사점을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