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호산외기' 등 기록
평민 활약 늘면서 傳도 증가
주인공 성격·인간성 등 부각
시인 강취주. 젊었을 때 동네 협객으로 건달 노릇을 하다 끝내 다리가 부러져 폐인이 되었다. 늘그막에 시를 배워 사대부들과 노닐며 즐겼다. 평소엔 책을 읽지 않았지만 그가 시를 지으면 스스로 천기를 얻은 구절이 보였다. 당시에 시를 잘 짓는다고 이름난 사람들은 그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했다.
예전에는 벼슬하던 신분이었지만 후대로 미천해진 집안의 김만최.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가난했던 그는 가업을 이어서 의술을 배웠다. 그러나 뜻에 맞지 않아 그만뒀다. 40여년을 떠돌아다닌 탓에 가난이 더욱 심해졌다. 살림살이라곤 하나도 없는 집에서 아내와 자식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남에게 급한 사정이 생긴 걸 보면 늦을세라 걱정하며 달려갔다. 남들과 사귈 때는 청탁을 묻지 않았다. 뜻에 맞으면 천하고 더러운 사람일수록 더욱 공경했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고 사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인물의 행적을 서술한 전(傳). 사실의 기록이면서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주인공의 성격이나 인간성이 더욱 부각되는 특징을 지녔다. 평민들의 이야기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그 양이 방대해졌다. 여러 분야에서 평민들의 활약이 늘어나면서 남다르게 살았던 그들의 삶을 전 형식으로 서술해 남기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어난 것이다. 그 가운데는 주인공의 제자나 유족에게 부탁을 받고 지어주거나 죽은 사람과의 친분 때문에 써준 경우가 있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 생애가 감동적이어서 스스로 짓기도 했다.
'조선평민열전'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평민 110여명의 삶을 '전'이라는 그릇에 담아 짧고 간명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편역한 책으로 평민 출신의 화가 조희룡이 1844년에 지은 전기집 '호산외기', 아전 출신 유재건이 1862년에 엮은 '이향견문록', 시인 이경민이 1866년에 묶어낸 '희조질사' 등에 담긴 기록을 골라 실었다.
110여명의 인물은 주로 직업에 따라 시인, 화가, 의원, 역관, 출판, 처사, 기생 등 열여섯 가지 범주로 분류했다. 평민서당 교재를 출판하고 인왕산 서당에서 오랫동안 많은 제자를 가르쳤던 장혼, 서른 살 무렵에 '청구도' 필사본을 제작하기 시작해 환갑 즈음 '대동여지도'목판본을 간행해 대량으로 지도를 찍어낸 김정호, 한양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주인이 더 이상 읽지 않는 책을 구해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팔아 지식유통망을 넓혔던 조신선,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을 가리지 않고 부름이 있으면 바로 달려가 치료해줬던 의원 백광현 등을 만날 수 있다.
제주 여인 김만덕도 '조선평민열전'의 일부를 구성했다. 채제공의 '번암집'을 바탕으로 '한낱 여자의 몸으로 의기를 내어 굶주린 백성 천백 명을 구제'했던 행적을 펼쳐놓았다. 알마.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