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그곳을 탐하다](16)에필로그

[골목, 그곳을 탐하다](16)에필로그
  • 입력 : 2014. 09.25(목)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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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서 만난 사람들

골목에서 만난 사람들

신년부터 골목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변화를 마주해 왔다. 길 위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경계의 언저리쯤에 존재하는 듯했다.

삶따라 흐르며 새로운 꿈을 품다
개발·상권 변화, 이민 열풍 등으로 달라지는 골목 풍경
틀에 맞춘 듯 엇비슷해지는 곳의 가치 재발견 움직임도

골목은 삶을 따라 흐르는 듯했다. 길 위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경계의 언저리쯤에 존재했다.

신년부터 골목을 누비며 다양한 변화를 마주해 왔다.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 다시 한 번 골목을 되짚어 걷는다.

# 사람들에게 골목은…

옛 기억을 더듬어 떠올린 골목 풍경엔 아련함이 묻어났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진 것들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마을 안길에서 보낸 어린시절 기억만은 생생했다.

용담1동 토박이 양인석(82)씨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제주향교 북쪽 '부러릿길'을 통해 친구와 뛰놀던 그때를 복기해 냈다.

"해 뜨고 달 뜨는 모습이 잘 보일 만큼 높은 지대였기 때문에 '부월리(부러리)'라고 불렀다. 지금은 고층 빌딩에 막혀 바다도 잘 보이지 않지만 어릴 적 '부월리'에 올라서면 제주읍내가 한 눈에 보였다"고 양씨가 말했다.

한석광(57)씨도 골목 위에서 추억 한 조각을 들어 보였다. 한씨의 식당 한 편에 걸려있는 제주시 서부두의 옛 사진 속 이야기였다. "탑동 매립 전만 해도 서부두 입구부터 현재의 라마다호텔까지 바닷물이 빠지면 드넓게 펼쳐지는 몽돌해안이 장관이었죠. 바릇 잡고 친구들과 멱을 감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골목은 누군가의 삶의 현장이자 소통의 공간이기도 했다. 오옥숙(58)씨는 30년 간 제주시 산지천 인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과거 사창가가 형성되면서 '아가씨 골목'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식이 좋지 않던 곳이었지만 "종업원 5명을 이끌며 오전 다섯 시 반부터 문 열고 영업했다"는 그에겐 소중했던 일터였다.

'현준엄마'라는 60대 여성은 탐라문화광장 조성 사업으로 인해 산지천을 떠날 채비를 하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떠났지만 아직도 서로 나누는 문화가 남아 있어요. 예전에는 생선을 사 먹어본 적이 없을 정도였죠. 다른 데 가서도 여기만큼 정을 붙일 수 있을 까 걱정입니다."

# 변화하는 골목

골목은 분명 변하고 있었다. '개발 바람'으로 인해 엇비슷하게, 또는 전에 없던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상권의 변화가 골목의 풍경을 바꿔놓기도 했다. '제주 상권의 원조'로 불리며 호황을 누리던 칠성로는 1976~1990년대 제주시 연동신시가지·일도지구 택지개발로 인구가 이동하고 상권이 분산되면서 갈수록 침체되고 있다. "거리가 죽으니까 마지못해 상가를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는 상인들의 말이 괜한 소리는 아니다.

최근에는 제주 이주 열풍으로 거센 변화가 일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다. 2010년 '육지 출신'의 세 여자가 해안에 '아일랜드 조르바'라는 카페의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5년 사이에 일반 음식점 12곳, 휴게음식점(커피숍 포함) 9곳, 민박(게스트하우스 포함) 19곳 등이 영업 중이다. 300가구가 채 안 되는 작은 마을에 불어 닥친 변화의 바람은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다.

2008년 월정리로 이주한 유영규(58)씨는 "월정에 정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해안도로 인근 땅값이 3.3㎡에 500만원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면서 "'알려진다'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바뀐다'는 것과 같은 말이지만 최근에 마을 지형이나 자연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들이 들어서는 점은 안타깝다"고 했다.

# 새로운 꿈을 꾸다

개발 등으로 인해 틀에 맞춘 듯 같아지는 골목의 모습이 아쉬운 이들은 그곳의 가치 재발견에 나서고 있다. 골목의 이야기를 찾고, 낙후된 곳에 새 옷을 입혀 그 지역만의 색깔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제주시청 학사로와 칠성로에선 젊은이들의 행보가 돋보인다.

칠성로 인근에서 제주문화카페 '왓집'을 운영하는 김정희, 윤선희, 문주현씨는 골목에 재미를 불어넣으려는 유쾌한 실험을 진행 중이었다. 세 여자는 "누구나 쉽게 동네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우리 동네의 멋과 맛, 이야기와 흔적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칠성로 골목 지도를 제작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문주현 씨는 자신들의 움직임을 이렇게 요약했다.

"지역의 이야기가 빠진 도시는 허울뿐인 것 같아요. 타 지역과는 다른, 그곳만의 재미가 없어지기 때문이죠. 누군가 하지 않으면 곧 사라질 것이기에 한 데 모아 남기려고 합니다."

청춘들의 모임 공간인 제주시청 학사로가 '뻔한 유흥가'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청년들을 움직였다. 골목에 문화를 입히고 싶다는 두 청년, 이춘식씨와 진홍준씨는 이러한 뜻을 담아 직접 만든 공예품과 음식, 예술활동 등을 선보이는 프리마켓 '봉그다'를 기획해 한 달에 한번 열고 있다. 비슷한 바람으로 생겨난 세화해변 벨롱장은 점차 입소문을 타면서 침체된 전통시장을 살리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낙후된 골목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골목 살리기에 나선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침체된 거리를 살리기 위해 골목의 사연을 모으고 벽화마을인 '기억의정원-두맹이골목'으로 단장한 사연에선 주민들의 꿈을 엿볼 수 있었다.

# 이야기를 마치며

기획 '골목, 그곳을 탐하다'는 부족함을 많이 남긴 채 여기서 끝을 맺는다. 그러나 골목은 삶의 방향을 따라 꾸준히 변해 갈 것이며 새로운 꿈을 품고 흐를 것이다. 이를 어떤 모습으로 가꾸고 이어나갈 것인가는 우리 사회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제주시 원도심 기행에서 만난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골목은 추억과 기억의 공간이 있는 곳입니다. 도시의 가치는 이러한 공간들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봅니다. 그게 바로 역사·문화의 도시를 만드는 것이죠." 김지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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