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들의 벗이던 어느 사제의 삶

빈자들의 벗이던 어느 사제의 삶
하삼두 글·그림 '알로이시오 신부'
  • 입력 : 2014. 10.03(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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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남쪽 항구도시 부산은 한국전쟁으로 고향을 버리고 떠난 피난민들이 바다에 막혀 머물게 된 막다른 땅이었다. 전쟁이 끝난지 4년이 지났지만 난민촌이 여기저기 자리잡았다. 1957년 부산에 짐을 푼 외국인 신부는 머뭇거릴 여유도 없이 시내 곳곳을 답사했다. 보수동, 자갈치시장, 아미동, 남포동에서 경상남도 산청군 시골까지 찾았다.

가난한 이들을 가슴으로 끌어안았던 알로이시오 슈월츠 신부(1930~1992) 이야기다. 부산교구에서 사제가 되는 첫 걸음을 시작한 알로이시오 신부는 소재건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정했다. 소는 슈월츠란 발음과 유사해 성으로 택했고 재건은 말 그대로 폐허의 땅에서 새롭게 일으켜세우겠다는 뜻이 담겼다.

'글쟁이 화가'로 알려진 하삼두씨가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우리말과 영문, 문인화로 그의 일생을 담아낸 책을 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나온 '알로이시오 신부'다.

미국에서 태어난 알로이시오 신부는 부산 송도를 중심으로 빈민구제활동을 폈다. 그로 인해 송도는 한국사회의 '복지 발원지'라는 평가를 받는다. 1964년 8월 15일엔 마리아수녀회를 창설했다. 알로이시오 신부의 살아있는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마리아수녀회는 지난 반세기동안 '소년의 집'아이들에게 수녀가 아니라 엄마로서 아이들을 사랑하며 최상의 교육을 통해 준비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온 곳이다.

1975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3년 라몬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알로이시오 신부는 1984년과 1992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두번이나 올랐다. 1990년엔 바티칸에서 존경받는 사제에게 주는 고위 성직자 '몬시뇰'로 임명됐다. 현재 가톨릭교회에서 '하느님의 종'으로 불리며 시복을 준비하는 단계에 있다.

그의 삶은 '아프리카 톤즈의 성자' 이태석 신부에게 영향을 미쳤다. 소년 이태석은 알로이시오 신부를 가까이서 보며 숭고한 꿈을 키웠다. 알로이시오 신부가 송도성당에서 사목하던 당시 그 성당을 다니고 있었고 이 신부의 어머니는 알로이시오 신부가 추진한 자수사업에서 손수건 수놓는 부업으로 생활비를 보탰다.

이태석 신부는 훗날 아프리카에서 정신적 스승인 알로이시오 신부가 그랬던 것처럼 아낌없는 사랑을 실천하게 된다. 이 신부는 유작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에서 '어릴 적 집 근처에 있었던 '소년의 집'에서 가난한 고아들을 보살피고 몸과 마음을 씻겨주던 소 신부님과 그곳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삶의 모습'을 언급하며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 아름다운 향기였다"고 썼다.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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