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로 그린 아시아전쟁의 비극 소설에 응축피해자 의식에 대한 전복
"만약 오키나와문학이 없었다면 현대일본문학은 그 얼마나 공허하고 빈한한 것이었을까. 만약 마타요시 에이키가 없었다면 오키나와문학의 풍요로움은 반감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문학부 다카하시 토시오 교수는 그렇게 말했다. 오키나와를 그리되 아시아, 그 너머의 세계까지 가닿는 마타요시 에이키(사진). 그의 소설엔 동세대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감이나 공허함과는 대극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스바루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마타요시 에이키의 소설집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곽형덕씨가 우리말로 옮긴 '긴네무 집'(글누림·1만2000원)이다. 2000년대 이후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어 등에 그의 주요 작품이 번역된 적은 있지만 한국어로 소개된 것은 처음이다.
오키나와현 우라소에시 출신인 마타요시는 여행을 제외하곤 오키나와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오키나와의 역사와 환경은 그를 소설가로 키웠다. 소년 마타요시는 집 둘레 2㎞ 안에 있는 류큐왕국의 성, 전쟁 당시 방공호, 투우장, 광대한 산호초 바다, 동양에서 제일 큰 미군기지 등을 매일 보고 자랐다. 그 무렵 강하게 마음에 새겨진 체험이나 풍경을 사색하고 그것을 새롭게 상상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긴네무 집'엔 전쟁이 불러온 비극을 응축시킨 표제작과 함께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 '창가에 검은 벌레가' 등 마타요시의 초기 대표작 3편이 실렸다. 발표한 지 35년이 지나 한국어로 번역됐지만 한국사회에 영향을 드리운 아시아태평양전쟁과 베트남전쟁을 상기시킨다.
거기엔 피해자 의식만 있는 게 아니다. 단순한 피해자로서의 자기 인식은 복잡한 삶의 양상을 대변할 수 없다. 어떠한 상황이 되면 악인이 선인이 되고, 선인이 악인이 되는 현실을 좇는 것이 소설이다. 군사기지가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지 그려나간 '조지가 사살한 멧돼지'는 오키나와인이 아닌 백인병사 조지가 시점인물로 등장한다. 미군 병사는 단순한 가해자로 묘사되지 않는다. 피해자 의식을 전복시키는 시도는 '긴네무 집'에서도 나타난다.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믿는 오키나와인들이 집단적인 망상을 만들어 조선인을 자살로 몰아넣는 이야기다.
소설집이 한국에서 발간된 시기에 맞춰 마타요시 작가가 마침 제주 방문에 나섰다.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 국제학술대회에 초청받아 자신의 소설관 등을 이야기하는 기회를 가졌다. 오키나와 문학인의 국내 강연은 매우 드문 일로 마타요시 작가는 이번에 처음 제주를 찾았다.
출국에 앞서 9일 제주4·3평화공원에 들른 그는 "섬이라는 공통된 원형질을 가진 제주와 오키나와는 역사적인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며 "제주에 와서 새로운 소설을 쓸 수 있는 감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같은 민족을 서로 죽였던 제주4·3은 분명 불행한 사건이지만 불행하면 불행할수록 문학은 그것을 가능성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며 "인간의 본질이 깊게 드러날 수 있는 문학이 제주에서 나오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