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 싶다](95)위미동백나무군락

[그곳에 가고 싶다](95)위미동백나무군락
  • 입력 : 2015. 01.30(금)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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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 2월이면 절정을 맞는 동백꽃 향기가 그득한 위미동백나무군락. 원안 사진은 동백꽃. 표성준기자

마을 전체에 그득한 '돔박꽃' 향기
한라산 돔박씨 뿌려 옥토 일군 현 할머니
500여그루 장관·붉디붉은 통꽃 절정 이뤄

제주에는 '물이랑 지커건 산짓물 지곡, 낭이랑 지커건 돔박낭 지라'는 속담이 전해진다(고재환 '제주속담사전'). 질이 단단하고 무거워서 좀도 잘 생기지 않는 동백나무를 나무 중에서도 일품으로 꼽았음을 알려주는 속담이다.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동백나무를 감상하기에 맞춤한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동백나무군락을 찾았다.

동백나무는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꽃을 피운다. 그중에서도 제주 동백나무는 1월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 2월에 붉디붉게 절정을 맞는다. 앞마당에 심어 꽃을 찾아보기 어려운 겨울철 관상용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집안에 동백나무 심기를 꺼리는 풍습이 있다. 한잎 두잎 지는 것이 아니라 꽃잎이 모두 붙어있는 통꽃이 통째로 떨어지는 모습에서 목이 잘려나가는 사형수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집안에 심으면 도둑이 든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동백나무는 실생활에서 널리 이용됐다. 제주사람들은 사시사철 뺨을 후려치듯 불어대는 바람을 막으려고 동백나무를 방풍수로 이용했다. 실제로 넓으면서도 사계절 무성한 나뭇잎이 돌담 이상의 방풍 효과를 준다. 9월이면 익어서 떨어지는 돔박씨(동백나무의 열매)로 짜낸 돔박지름(동백기름)은 여인들의 머릿기름과 식용유뿐만 아니라 약용으로도 활용됐다. 기침을 해도 돔박지름, 배가 아파도 돔박지름을 먹었다.

옛 문헌을 보면 과거에는 제주도 곳곳에 동백나무숲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동백동산과 남원읍 신흥리 동백나무군락, 위미동백나무군락 정도가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돼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중에서 위미동백나무군락은 약 560여 그루가 600m 가까이 둘러서서 장관을 이룬다. 이곳은 17세 되던 해 이 마을로 시집온 현맹춘(1858~1933) 할머니가 해초작업과 김매기 등을 해서 어렵게 모은 돈 35냥으로 황무지인 속칭 '버둑'을 사들인 뒤 한라산 동백나무 씨 서 말을 따다 뿌린 것이 군락을 이루게 됐다고 한다. 바다에서 직선거리로 약 100m 지점에 자리 잡은 농토인지라 바닷바람을 막으려고 심은 것이 지금은 제주에서 가장 긴 동백나무군락이 됐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최근 지구온난화로 난대수종의 분포지역이 한반도 내륙으로 확대됨에 따라 동백나무의 온실가스 흡수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동백나무숲 탄소저장량을 산정해 발표했다. 국제 규격 축구장 982개의 크기인 우리나라 동백나무숲은 이산화탄소 총 흡수량이 4868tCO₂에 달한다. 동백나무숲이 중형자동차 2100여대가 1년 동안 내뿜는 CO₂를 상쇄시켜주는 셈이다.

위미리에는 '일년열두달 물에질 하영 한푼두푼 모여논 금전 서방님 술상에 다 들어간다'는 가사가 들어간 노젓는소리가 전해진다. '삼시굶엉 물질하멍 한푼두푼 모인 금전 낭군님 술값으로 다들어간다'는 위미리 해녀노래도 있다. 서방님 술상을 차리는 대신 옥토를 일궈낸 현 할머니의 혜안과 지혜가 깃든 이곳은 지금 동백꽃 향기가 마을 전체에 그득하다. 동백나무 아래로 펼쳐진 잣굽담 쌓기 방식의 돌담도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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