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선생'이면서도 누군가는 그의 시를 '제주도 국어선생이 가장 가르치기 어려운 시'라고 말한다. '설명할 게 없어서 멀뚱멀뚱 종 치기만 기다리는데 눈시울은 젖고 가슴은 먹먹해지는 시'라는 것이다. 바로 4년만에 시집을 낸 김수열(57)시인의 이야기다.
그의 시는 삶의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경쾌한 언어감각과 반전의 익살을 통해 삶의 비애를 해학으로 돌려놓는다. 그가 구사하는 반전을 통한 익살은 민중적 비애를 건강한 웃음으로 치유하는 효력을 갖고 있다.
시집의 제목 '빙의'는 이중적인 뜻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빙의'는 죽은 이의 혼이 산 자의 정신에 덧씌워져 자신을 말을 전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수록작 '빙의'에는 이같은 현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와 함께 시인은 자신의 시로 민중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빙의'로 규정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선지 그의 시를 읽으면 '피식'웃게 되지만 가슴은 먹먹해진다. '아내가 읽지 말았으면 하는 시'도 그중 하나. 작은 벌레를 보고 놀라서 속상해 하는 아내를 위해 자신이 몰래 손가락만한 지네를 치워내는 남편들의 이야기다. 자신이 '아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면, '아내'와 함께 산다면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시인은 부유물처럼 떠돌고 있는 죽음을 삶 속으로 끌고 온다. 먹고, 보고, 이야기하는 일상 속에서 서로가 빙의되는 행위를 통해 지친 육신과 영혼을 묵묵히 다독인다. 이 번 시집은 생과 사를 선 긋지 않고, 존재의 있고 없음의 차이를 넘어 땅속으로 스며드는 물처럼 천연덕스럽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의 배경은 실로 넓어졌다. 제주섬을 벗어나 연변, 베트남, 모리셔스까지 생의 낮은 곳에 있는 노동자의 애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여기에 다양한 대상들과 교감을 나누는 장면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시집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흔적이 드문드문 들어있다. "나이가 들수록 글의 눈높이가 그분을 닮아간다. 살아생전 아들의 자잘한 글에 돋보기 들이대고 꼼꼼 읽으시던 아버지가 이번 시집에도 눈길을 주셨으면 한다"는 말과 함께.
1982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김 시인은 시집 '어디에 선들 어떠랴',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 '생각을 훔치다'와 산문집 '섯마파람 부는 날이면' 등이 있다. 현재 제주작가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실천문학사.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