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귀포 예술의 전당입니다. 온 나라와 세계가 북한의 모란봉 관현악단의 서귀포 예술의 전당 공연소식으로 연일 특보를 내보내고 있는 가운데 이번 남북교류공연은 원희룡 제주자치도지사와 제주도의회 의원들의 숨은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번 도립제주교향악단의 평양공연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킨 원희룡 도지사의 인터뷰입니다…." 이런 순간이 오기나 할까?
이미 이전에도 이러한 시도는 많이 있었다. 가깝게는 2015년 1월 문화융성위원회가 제안한 8·15 남북 오케스트라 합동공연이 그것이며, 2012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의한 서울시립교향악단 평양공연이었다. 물론 아직 그 소식의 결과는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보았지 않았는가! 24년 전 한반도 긴장완화와 한·러 협력을 위해 고르바초프의 제주방문이 가져다준 파급효과를 말이다. 제주도가 역사와 민족 앞에 자랑스레 내놓을 수 있는 역할을 한다면 지금 그때인 것이다. 원희룡 도지사와 도의회는 정쟁을 멈추고 도립제주교향악단을 평양에 보내야 할 시기를 더 이상 놓치지 말아야 한다. 도립제주교향악단의 평양공연은 통일 전이든, 통일 후든 언젠가는 꼭 일어나게 될 필연의 역사이다.
영감(Inspiration)은 영감을 받다( Inspire)의 명사형이다. 놀라움이 자신 안에서 자극을 줄 수 없는 것처럼 영감 역시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이다. 영감 없는 지휘자 밑에서 연주한다는 것은 고통의 시간이다. 반대로 영감을 줄 수 있는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단원과 청중에게는 크나큰 기쁨과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는 사실이다. 모차르트를 비롯한 많은 작곡가가 받았던 그 영감을 아는 지휘자, 그 영감을 관객들에게 전할 수 있는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온 마음을 다해 존경과 경의를 보낸다.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29-1989)은 말한다. '내가 오케스트라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피해(damage)는 명확한 지시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앙상블(Ensemble)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오케스트라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의 음악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이다.
카라얀 타계 이후 뒤를 이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이탈리아 1933-2014) 역시 같은 말을 한다. "서로 들어라(Listen)"이다.
물론 지휘자의 영감과 리더십이 함께해야만 이룰 수 있는 감동의 순간이다. 카라얀의 수직적 카리스마와 아바도의 수평적 카리스마가 지니는 의미와 목적은 다르다. 하지만 공동체를 위한 최소와 최선의 조건이 서로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공통의 의미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최악의 지휘자는 권위와 지위 그리고 통제를 앞세우는 귀 없는 지휘자이다. 예술적 감수성이 없는 지휘자, 자기 이익에 목표를 두고 행동하는 지휘자의 말로(末路)는 단원들의 존경은 커녕 오케스트라에서 쫓겨나고 말 것이다.
원희룡 도지사와 도의원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의견과 사건에 대한 답변 혹은 대책으로 쉴 틈이 없겠지만, 제주도민과 민족 앞에 필요한 영감이 무엇인지 전해주길 바란다. 비단 도립제주교향악단의 평양공연과 모란봉관현악단의 남북교류 이야기뿐만 아니다. 정쟁과 난제 가운데 우리가 탐라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그 영감을 이제 내어놓으시라는 말이다.
변화해야 할 때임을 먼저 인지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창조적인 영감을 가지고 실천한 도립제주교향악단 초대 지휘자 이선문(1947~1997) 선생을 기억한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은 내게 큰 행운과 기쁨이었으며 지금도 그로부터 영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