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김창후 정리…한림·한경지역 묶어내
"이런 얘기를, 내가 경험한 이런 일을 꼭 후세에 남겨두고 싶었어. 나는 지금 4·3을 경험한 사름치고는 나이도 그리 많지 않아. 67이야. 내가 참, 자다 깼다 허멍 하루에 한 번 4·3 때 겪은 이 일을 생각 안 해본 날이 없어."
올해 또다시 4·3이 전국을 달구고 있다. 정부에서는 지난해 66주기 4·3위령제를 맞아 '4·3희생자 추념일'로 지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4·3희생자 재심의'논란이 불거지는 등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4·3연구소가 엮어낸 구술총서 7권 '만벵듸의 눈물'과 8권 '가리방으로 기억하는 열두 살 소년의 4·3'이 최근 한울아카데미에서 나란히 나왔다. 7권은 허영선 시인이, 8권은 김창후 전 4·3연구소장이 정리했다.
제주4·3연구소는 구술 채록이라는 방식으로 살아남은 자들이 기억하는 4·3을 복원했다. 4·3을 겪은 생존자들은 가족을 잃고, 고향을 등지며 4·3 이후에도 그날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날의 끔찍한 기억은 평생 동안 생존자들을 괴롭혔지만 생존자들이 그날에 관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그들의 증언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일 뿐이지만, 우리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그 이야기를 기억해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제주는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한 '제주4·3 1000인 증언채록 사업' 과정에서 녹취한 1028명의 증언채록 결과물이다.
'만벵듸의 눈물'은 엄혹했던 시절 영화 '지슬'이 눈앞에 떠오르는 용눈이 오름과 큰넓궤에서, 금악오름에서, 한라산의 이름모를 곳곳에서 단지 목숨하나를 부지하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겪었던 보통사람들의 삶을 이야기로 엮고 있다. 제주시 한림읍에 거주하는 4·3 생존자 13명의 구술을 정리했다.
'가리방으로 기억하는 열두 살 소년의 4·3'은 제주시 한경면에 거주한 4·3 생존자 13명의 구술을 정리해 엮은 것이다. 눈앞에서 형님의 죽음을 목격하고 복수를 다짐했지만 차마 실행할 수 없었다던 증언이나, 4·3 때문에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했다는 증언에서 4·3이 제주도 주민들에게 남긴 상처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67년 전에 일어난 비극, 제주4·3 사건을 제주 방언으로 그대로 살려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서는 사료로서의 가치를 한층 높였다. 이는 제주에서조차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기록·보존하고 있다.
4·3연구소는 앞으로도 제주의 지역별로 총서 출간을 이어갈 계획이다. 4·3연구소는 "진실이 규명되지 않고, 아픔이 봉합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사회는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사회의 아픔에 성숙하게 대응할 수 없다. 정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다. 이번 총서가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밝혀지지 않은 역사와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