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路 떠나다]서귀포시 성산읍 대수산봉

[길 路 떠나다]서귀포시 성산읍 대수산봉
유명 관광지 뒤에 숨은 성산의'파수꾼'
  • 입력 : 2015. 02.13(금) 00:00
  • 송은범 기자 seb1119@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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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산봉 정상에서 바라본 성산리와 고성리. 손에 잡힐듯 일출봉이 지척이다. 송은범기자

성산읍 지역 한 눈에 볼 수 있는 명당
일출봉·우도·지미봉 품어안은 풍광 장관

정상 부근 좁은 오르막 숲길은 요주의

입춘(立春)이 지났다. 들판의 고사리들도 서서히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덩달아 관광객들도 이른 봄을 느끼기 위해 제주를 찾고 있다.

제주의 명소는 헤아릴 수 없고, 저마다 빼어난 자연과 정취를 품고 있지만 굳이 한 곳을 꼽아야 한다면 서귀포시 성산읍을 추천하고 싶다.

성산읍은 성산일출봉, 우도, 섭지코지 등 제주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이며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지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화려한 관광지 뒤에 묵묵히 파수꾼처럼 우뚝 서 있는 대수산봉(大水山峰). 쟁쟁한 주변 관광지들 때문에 비교적 외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 반대로 그런 관광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대수산봉 정상에 가면 오붓이 쉴 수 있는 하얀의자.

대수산봉은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위치한 촉화산(燭火山)이다. 제주도 말로는 큰물뫼(大水山)라고 한다. 옛날 분화구에 물이 솟아 못을 이뤄서 이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성산읍 주민들에게는 마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가 조성된 곳으로 인식된다.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정승하(30·성산읍)씨는 "옛날 어른들은 가장 터가 좋은 자리에 묘지를 썼다"며 "성산사람들에게는 이곳이 명당"이라고 말한다.

대수산봉은 표고 137m로 일출봉을 제외하면 주변에서 가장 높은 오름이다. 덕분에 주변 지역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조금 긴듯한 계단을 7~8분 정도 오르고 나면, 산책로 같은 편한 길이 이어진다.

대수산봉 산책로길.

정상이 가까워지자 오르막으로 된 좁은 숲길이 시작됐다. 나무와 덤불들이 얽히고 설켜 정글 속에 있는 느낌이다. 곧 정상에 도착한다는 마음에 숨이 차오르는 것을 참고 달리기 시작했다. 오르막이라 속도가 좀체 나지 않자 더 힘을 내서 달렸다. 갑자기 '찌익' 소리가 나더니 하얀 털이 눈처럼 날렸다. 좁은 길에서 무리하게 달리려 하다 보니 그만 가시덤불에 웃옷이 찢어졌다. 한 순간에 값비싼 취재가 됐다.

쓰린 속을 억누르고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조상님들이 죽어서도 후손들 사는 모습 한 눈에 보라고 이곳에 묻었나 보다. 성산읍 마을 곳곳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 우도, 바우오름, 지미봉으로 이어지는 풍광이 장관을 이룬다.

정말 아름다웠다.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소가 질걸질겅 되새김질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기자도 한번 봤던 풍광을 몇 번이고 눈으로 되새김질 하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정상에는 뜬금없이 하얀색 벤치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특이하지만 무언가 운치가 있어 보인다. 정상에 전망대를 설치하면 펼쳐지는 경관을 훼손시키기 때문에 벤치 하나만 설치한 걸까? 성산읍사무소에 어떻게 벤치를 설치했냐고 물어 봤지만, 딱히 별다른 이유는 없다고 한다.

정상에 도착하기 전 쉼터와 철봉.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를 사랑하는 이유를 물으면 이곳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먼저 오는 계절이 다르고, 말(言)과 음식도, 산과 바다도 다르다. 심지어 바람도 육지와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관광지 주변에는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가 줄지어 들어서는 등 본래 제주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로 인해 제주에 '다름'을 느끼러 찾아와 '같음'을 느끼고 실망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같은 실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대수산봉은 다시금 제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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