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봄은 벚꽃이 피기 전과 후로 나뉜다. 벚꽃 전에 매화와 동백, 목련이 꽃을 피워 봄의 시작을 알리지만 섬 전체의 경관을 만들어내기엔 성글다. 천지를 덮는 벚꽃이 피어서야 비로소 제주의 봄은 완성된다. 해안에서 시작해 구도심과 일주도로로 올라간 벚꽃은 문예회관 앞뜰과 동부경찰서 뒤뜰로 이어지고, 연삼로와 한라수목원으로 뻗어 중산간과 한라산 중턱까지 차례로 뻗어나간다. 낮에는 햇빛, 밤에는 불빛을 받아 형광색 경관을 만들어내는 벚꽃은 자연의 일루미네이션이다.
왕벚나무의 꽃은 벚꽃 중에서도 잎이 가장 크고 아름다우면서 꽃이 피어있는 기간이 길다. 일본의 꽃으로 오해하지만 지금까지는 세계에서 오직 제주도와 전라남도 대둔산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식물의 자생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천연식생 중에 생육하고, 개체수가 많으며, 늙은 나무에서 어린 나무까지 있어야 하고, 혈연적으로 가까운 종들이 많이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조건을 구비한 곳이 바로 한라산이다. 이를테면 한라산은 왕벚나무의 집성촌이다.
지난주 벚꽃축제가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꽃망울이 터지지 않아 애를 태우던 벚꽃이 일제히 꽃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지금 제주섬 어디를 가더라도 만날 수 있는 벚꽃 명소를 다시 짚어보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물리지 않아서다.
제주시 전농로는 제주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대표적인 벚꽃 명소다. 구도심 한복판에 이만한 가로수 전경을 갖춘 곳도 없을 듯하다. 지난 주말 이곳에서는 서사라문화거리축제가 열려 지금도 청사초롱이 불을 밝히고 있다. 또한 제주문학의 집은 '봄꽃, 사랑의 시로 번지다'를 주제로 시화전과 토크 콘서트를 마련했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러브스토리를 전해주는 조정철과 홍윤애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콘서트였다. 전농로에 가면 홍랑의 작은 무덤이 있던 홍랑길도 걸을 수 있다.
매년 벚꽃축제가 열리고 있는 제주종합경기장 일대도 빼놓을 수 없다. 종합경기장 입구에서부터 한켠에 빽빽이 심어놓은 왕벚나무길은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제주대학교 진입로도 벚꽃 명소다. 5·16도로 제주대 사거리에서부터 제주대 정문까지 약 1㎞의 가로수길은 산책뿐만 아니라 드라이브하기에도 좋다.
한라수목원은 가족들이 즐겨 찾는 벚꽃 명소다. 1100도로 한라수목원 사거리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수목원 입구까지 약 600m의 왕벚나무 가로수길을 걸을 수 있다. 한라수목원의 남다른 점은 수목원 내에서도 빽빽이 심어놓은 왕벚나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제주시에서는 광령리에서 장전리까지의 중산간도로에 오래된 벚나무가 도로 양쪽으로 늘어서 운치를 더해준다. 서귀포시에는 중문관광단지와 가까운 예래동 거리와 중문 시가지와 천제연폭포로 이어지는 거리가 있으며, 벚꽃과 유채꽃을 같이 즐길 수 있는 녹산로도 추천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이들 벚꽃이 모두 진 뒤에는 한라산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아볼 만하다. 5·16도로변 한라생태숲 맞은편에 자리잡은 자생지의 왕벚나무는 왜 왕벚나무가 제왕의 품격을 갖췄다고 하는지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