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 싶다](103)제주 동자석 다시 보기

[그곳에 가고 싶다](103)제주 동자석 다시 보기
'제주 동자석' 사진으로 만나다
  • 입력 : 2015. 04.10(금)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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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과 세월호 1주기를 추념해 죽은 자의 영혼을 지키고 위로하며 '천의 얼굴'이라 불리는 제주 동자석(원안 사진)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천의 얼굴 제주 동자석'
30일까지 이창훈 사진전

약 15년 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소재 김만일 묘지의 동자석이 도난당한 일이 있었다. 김만일은 지금으로 치면 탱크에 견줄 만한 군마를 임진왜란 당시 조정에 바쳐 정2품에까지 올라 이른바 '헌마공신'으로 불리는 역사적 인물이다. 이 동자석은 도난사건 이후 밀반출된 뒤 다른 지역 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것을 후손들이 수소문 끝에 확인했다. 그러나 찾아온 동자석을 그 자리에 다시 세워둔 것이 화근이었다. 3년 만에 다시 도난당한 이 동자석은 지금까지 행방을 찾을 수 없다.

무덤에 세우는 사람 모양의 석인상인 제주 동자석은 제주도 전역에 분포한다. 다른 지역에도 있지만 제주의 동자석은 현무암과 조면암, 용암석 등 제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암석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점이 차별화된다. 조각 형태에 있어서도 육지부의 석상과 달리 민머리에 댕기나 쪽진 머리를 하고 있다. 의복이나 몸의 형태도 아주 간소하게 표현되고, 크기도 작아 서민적이면서도 단순한 형태의 조각미로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동자석의 또 다른 매력은 두 손에 받쳐든 지물의 다양성과 그 상징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처가 권능과 자비를 상징하기 위해 들고 있는 지물과 달리 동자석의 지물은 무덤 속 주인을 위한 물건이다. 따라서 동자석의 지물을 보면 망자를 알 수 있다. 심부름을 기다리듯 두 손을 공손히 모은 공수형이 가장 많지만 꽃과 새 같은 동식물을 지닌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붓과 벼루, 술병과 술잔, 부채, 홀 등 다양한 지물은 제주사람의 내세관을 반영하기도 한다.

제주 동자석은 육지에 동자석이 설치되기 시작한 이후인 17세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8세기 이후 제주 전역에 널리 퍼진 동자석은 20세기 전반까지 계속해서 제작·설치됐다. 17~20세기라는 한정된 시기와 제주라는 제한적 공간은 제주 동자석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그러나 제주 동자석은 김만일 묘의 사례처럼 이미 상당수가 타 지방과 외국으로 반출됐으며, 지금도 끊임없이 도난·훼손·분실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민속자연사박물관이 '천의 얼굴-제주 동자석' 특별전을 마련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죽은 자의 영혼을 지키고 위로하는 동자석은 제주 4·3과 세월호 1주기를 추념하는 4월의 전시 주제로도 안성맞춤이다. 제주의 혹독한 환경을 헤치며 살아온 제주인의 정서와 혼이 담긴 예술품이 오늘날 도난과 밀거래의 대상이 되고, 밀반출되는 현실도 전시의 의미를 더해준다.

이번에 전시 중인 작품은 10년 이상 제주 동자석 연구에 몰두해 온 이창훈 (사)제주동자석연구소 소장이 제주도 전역에서 촬영한 동자석 사진 50여점이다. 전시회를 보면 동자석을 왜 '천의 얼굴'이라 부르는지 이해할 수 있다. 손오공의 현신인 듯한 기괴한 얼굴의 동자석에서부터 '동자석의 제왕'이라 부를 만한 품격과 위풍당당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동자석까지 감상할 수 있다. 박물관 내에는 다양한 실물 동자석도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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