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작하며] 문화·예술의 토양을 생각하자

[하루를 시작하며] 문화·예술의 토양을 생각하자
  • 입력 : 2015. 04.29(수) 0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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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의 융성을 말할 때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를 떠올리게 된다. 물론 문화·예술만이 아니라 과학, 경제, 사회, 정치 구조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는 모두 각각의 분야에서 개인의 인식적 변화에서 기인한 현상이었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출현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시대의 공통점이 정치적 혼란기였으며 과도기라는 점이다.

1990년대 말부터 중국을 비롯해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일기 시작한 '한류'라는 신조어는 한국 대중문화의 선풍적인 인기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이와 관련한 문화산업 일반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이를 고려했는지는 모르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4대 국정기조의 하나로 내세운 '문화 융성'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문화·예술에 한 발을 담근 사람으로 이를 반겨야 하지만 몹시 곤혹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문화와 예술이 정부의 정책만으로 융성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예술이 그렇듯이 개개인의 인식이 자유로운 정신적 바탕 위에 표현되고 공감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시책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문화·예술이 정책만으로 부흥하고 쇠퇴하는 것이 아니므로 문화·예술의 융성을 구호로 외치는 일은 문화·예술의 토양을 오염시키고 가치를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2013년 '문화융성위원회'는 8대 과제를 발표했다. 얼핏 보면 그럴 듯한 과제이고 추구해야 할 방향처럼 보여도 그 내실은 구호에 불과했다. 과제 중 첫째 '인문정신의 가치 정립과 확산', 셋째 '생활 속 문화 확산' 그리고 다섯째 '예술 진흥 선순환 생태계의 형성'을 제시했다. 이런 정신의 상호 작용과 관련된 일들이 정책 시행에 따라 말처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세부 사항들이 모두 이루어졌다고 해도 이는 진정한 문화·예술과 거리가 멀다. 문화·예술의 본질은 자생력이고 그 표현의 결과에 따라 생성되고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문화 정책 분야 보조금 집행 실태'에 대한 제주도감사위원회의 특정 감사가 있었다. 2014년 예산이 126억 원이 넘는다. 문화·예술 분야의 개인과 단체에 이 예산이 지원되면 문화·예술이 발전이 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제주의 문화·예술은 쇠퇴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감사위원회의 감사 내용을 보면 이 막대한 재원이 실질적 문화·예술의 융성과 관련이 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제주의 문화·예술이 스스로 자생력을 포기한다면 고매한 가치를 남겨볼 수도 없고 공시적, 통시적으로 그 공감을 얻어낼 수도 없다.

문화·예술은 자랑거리도 아니거니와 자기도취적 맹목도 아니다. 보조금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우쭐할 것이 아니라 미안해야 하고 충분한 값을 지불하며 찾아오는 이 없이 개인이든 단체든 자신들만의 위안을 삼는 장이라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문화와 예술이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자산이며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여기쯤에서 되돌아보아야 한다. 문화와 예술의 길은 인식의 자유로운 표현과 공감이며 삶의 자연스러운 발현과 함께함이다.

제주의 문화·예술을 보면서 문화예술인 스스로 혼란을 자초하고 본령을 팽개치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문화·예술이 정부의 시책과 보조금에 의해 좌우된다는 발상은 아무래도 우리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는 원인은 될지언정 우리가 바라는 토양과는 거리가 멀다. 문화·예술의 참다운 토양은 자생력에 의한 새로운 인식과 표현에 있고 이런 문화·예술이야말로 삶의 질적 변화를 주도하는 가치, 곧 희망이 되는 것은 아닐까. <좌지수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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