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25시]회색버튼
  • 입력 : 2015. 05.21(목) 00:00
  • 박소정 기자 cosoro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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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 취재한 적이 있다. 이를 취재하게 된 계기는 무심결에 누른 '버튼' 때문이었다. 어느 날 점심을 먹고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멈춰섰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신호등에 달린 회색 버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였다. 작동이 잘 되고 있는지 혹시나 해서 눌러봤다. 안내음이 흘러나와야 할 신호기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는 순간이랄까.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에 설치된 음향신호기도 눌러봤다. 또 횡단보도를 건너 음향신호기를 눌렀다. 이렇게 버튼 눌러보기는 자연스레 취재로 이어졌다. 제주시 연동 그랜드호텔 사거리를 시작으로 제원사거리 일대, 중앙로, 탑동, 동문로, 시청 일대 횡단보도를 돌며 음향신호기를 눌러봤다. '역시나' 시각장애인이 이용하기엔 불편한 점이 많아보였다. 점자블럭이 설치된 횡단보도 보행자 정지선과 멀리 떨어져 신호기가 설치돼 있었고, 신호기의 음량이 제각각인데다 고장난 신호기도 있었다.

음향신호기는 시각장애인이 도로를 횡단할 때 음성으로 안내해주며 길잡이 역할을 한다. 현재 도내 보행신호등 1480곳 가운데 음향신호기가 설치된 곳은 786개에 불과하다. 절반 조금 넘는다. 이마저도 오작동이 많고 형식적으로 설치돼 전혀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나마 설치된 음향신호기는 어떻게 관리되고 있을까. 제주도자치경찰단은 현재 도내 3개 업체에 맡겨 수시로 음향신호기를 점검·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취재를 통해 만난 한 시각장애인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시각장애인은 목숨을 걸고 길을 건너야 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설물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그의 말은 시각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말하는 듯 했다. 매순간 목숨을 걸고 길을 건너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시각장애인들, 이들을 위한 행정이 아쉬울 따름이다. <박소정 뉴미디어총괄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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