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수교 50년 제주와 일본을 말하다/제6부. 유후인 마을만들기](1)주민 주도 발전 전략

[광복 70년·수교 50년 제주와 일본을 말하다/제6부. 유후인 마을만들기](1)주민 주도 발전 전략
주민 힘 모아 만든 동화 마을… 일본 관광 ‘뜨는 별’ 되다
  • 입력 : 2015. 06.15(월)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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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비칠때 물고기 비늘이 금빛으로 빛난다고 해 이름 붙여진 긴린코(金鱗湖). 유후인의 명소인 이 호수에서 유후인역까지 이어지는 거리에는 다양한 상점과 미술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강경민기자

개발 보다 보전에 중점 두고 '보양형 온천지'로 발전
외부자본에 의한 대규모 개발 저지해 마을 풍경 지켜
주민 아이디어로 지역경제 활성화… 연 400만명 방문


얼핏 보면 그저 작은 농촌마을이다. 인구는 1만명이 갓 넘는다. 그런데 해마다 4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일본 규슈 오이타현에 위치한 유후인. 그 비결은 무엇일까.

▶산으로 둘러싸인 동화마을= 유후인은 오이타현 중심부에 있는 산촌이다. 유후다케(1583m)를 비롯해 1000m가 넘는 산줄기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타원형 분지로 평균 고도는 해발 470m다.

유후인은 온천마을로 유명하다. 일본에서 벳푸에 이어 두 번째로 용출량이 많다. 835개 원천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의 양이 1분에 4만2000ℓ에 달한다.

그러나 온천의 역사는 생각 만큼 길지 않다. 유후인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면 도착하는 벳푸의 온천이 개발된 게 100여년 전이다. 벳푸는 메이지시대에 굴착 기술이 발달하면서 온천 개발과 이용이 본격화됐다. 이에 반해 유후인은 1960년부터 온천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50여년 전 일이다.

유후인은 일본 주민자치운동인 '마치 츠쿠리'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로 하면 '마을 만들기'에 해당한다. '동화 속 마을'이라고 불릴 만큼 고즈넉하고 아기자기한 풍경. 석양이 비칠 때 물고기 비늘이 금빛으로 빛난다고 해 이름 붙여진 긴린코(金鱗湖)를 따라 마을 안길로 접어들면 그 이유가 읽히는 듯하다.

유후인을 찾는 관광객들은 느릿하게 마을을 걸으며 자연속에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한다.

▶자연 가치 살린 마을만들기= 유후인은 대규모 자본에 의한 개발과는 거리가 멀다. 주민들은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을 꿈꿨다. '개발 아닌 개발'을 택한 것이다.

중심에는 이와오 히데카즈씨가 있다. 1955년 오이타현이 유후인 분지 안에 두 마을을 통합한 후 처음으로 선출된 정장(町長)이다. 당시 나이 36세. 1950년대 초 유후인에 거대한 댐을 건설하고 인근에 리조트관광지를 만든다는 일본 정부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마을 청년단장이었다. 이와오 정장을 중심으로 한 주민들은 개발보다 보전에 중점을 둔 마을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유후인 온천 개발 계획도 이러한 틀에서 짜였다. 대형 레저시설을 만들어 단체 관광객을 유치하는 '환락형 온천지'가 아닌 '건전한 보양형 온천지'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일본 최대 온천이자 환락가였던 벳푸와 차별화를 두고 누구나 편히 쉬다 갈 수 있는 마을 모습을 그렸다.

주민 대표단이 1971년 독일의 온천유향지인 바덴바덴을 조사하고 돌아오면서 이 같은 계획은 구체화됐다. 주민들은 '풍부한 자연과 온천지에서의 즐겁고 안정된 생활이 유후인의 최대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데 뜻을 모았다.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고민하자 행정도 힘을 보탰다.

대규모 자본에 의한 개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0~1980년대까지 골프장, 리조트 건설 계획이 잇달아 발표되며 마을을 수차례 뒤흔들었다.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개발로 인해 마을 자연환경이 변하면 지역 가치가 사라진다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1971년 구성된 '내일의 유후인을 생각하는 모임'은 주민 간의 협의기구 역할을 맡았다. 주민 스스로 마을의 미래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움직임이 활발해 진 계기였다.

주민들은 마을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대규모 개발을 막아섰다. '정감 있는 마을 만들기 조례'를 제정해 1000평 이상, 15m 이상의 건축물은 쉽게 지을 수 없도록 건물 규모와 높이를 제한했다. 눈높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건물 위로 마을 어디에서나 유후다케를 볼 수 있는 유후인 풍경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유후인에는 일반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상점가와 유럽풍의 건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유후인에는 옛 것과 새로움의 조화가 읽힌다. 주민들은 기존의 것을 유지하면서 그 속에 현대적인 느낌을 더해 특색 있는 풍경을 만들어 냈다. 사람이 직접 끄는 인력거가 골목을 누비는 한편에는 영국의 클래식카가 마을의 주요 코스를 빙 돈다. 한때 가정집이었던 건물을 개조해 만든 상점이 골목을 따라 이어지고, 유럽의 한 마을을 연상하게 하는 건축물이 사이사이 튀지 않게 자리한다. 그 안에서 만나는 다양한 기념품, 캐릭터 제품, 액세서리 등은 또 다른 볼거리다.

마을은 문화·예술 요소를 덧입었다. 이 모두가 주민들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유후인에선 해마다 5월 영화제가, 7월 음악제가 열린다. 1975년 규슈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로부터 마을을 재건하기 위한 시도였는데, 올해로 40년째를 맞는다.

1970년대 말 시작된 '소고기 먹고 큰 소리 지르기 대회'도 눈여겨 볼만하다. 지역 축산농가와 목초지를 지키기 위해 도시민들의 힘을 빌려 소를 구입해 키워주는 '소 한 마리 목장주 운동'에서 발전한 이벤트다.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행사는 일본 전역에 마을을 알리는 것은 물론 농촌과 도시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유후인에는 해마다 400만명이 찾는다. 관광객 5명 중 1명이 하루 이상 머물고, 이들이 소비하는 금액이 한 해에 140억엔(한화 약 1300억원)에 달한다. 유후인은 본래 농촌마을이지만 1차산업 비중은 30% 안팎에 그친다. 관광객이 늘다보니 음식·숙박·서비스업 등 3차 산업 종사자가 70% 이상을 차지한다.

관광업이 활성화되면서 농업 등 지역 모든 산업에 파급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마을 내 업소들이 주민을 우선 고용하고 필요한 농축산물도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구입해 쓰기 때문이다. 유후인과 쇼나미정, 하지마정을 합친 유후시의 연간 소득규모는 남녀 구분 없이 1인당 300만엔(한화 2700만원) 정도. 일본의 주요 지방도시보다 높은 수준이다.

자연, 온천, 문화예술이 어우러지는 유후인의 오늘은 하나의 발전 방향을 공유한 주민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 외부 자본에 의지하기보다 자체적인 성장 동력을 만들고, 주민 스스로가 끝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실험한 결과다. 마을만들기 사업이 진행하는 제주지역 105개 마을에 유후인이 던지는 메시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별취재팀=강시영·강경민·김지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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