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수교 50년 제주와 일본을 말하다/제5부. 세계중요농업유산 아소](1)민간중심의 등재

[광복 70년·수교 50년 제주와 일본을 말하다/제5부. 세계중요농업유산 아소](1)민간중심의 등재
"변화에 더딘 농업활동… 젊은 리더들 역할 중요"
  • 입력 : 2015. 06.01(월)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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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제주와 일본을 말하다’ 특별취재팀과 미야모토 켄신씨가 현지에서 간담을 하고 있다. 강경민기자

[ 인터뷰/ 아소 세계농업유산 등재 선구자 ‘미야모토 켄신’]
지역산 식재료 중요성 깨닫고 농업보전 방안 고민
농업유산 보전과 활용 위한 기금모금 활동도 활발

미야모토 켄신(40)씨는 흰색의 셰프 복장을 하고 있었다. 딱 2년 전 그때처럼. 그를 처음 만난 건 2013년 5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일본 이시카와현에서 열었던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 국제회의에서였다. 당시에도 그는 하얀 요리사 가운을 입고 무대에 섰다. 구마모토현 아소가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됐음을 알리는 인증서를 받기 위해서였다.

구마모토현에 있는 20~30평 남짓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지난 4월 그를 다시 만났다. 저녁 손님맞이 채비로 분주했지만 그의 말은 쉬이 그칠 줄 몰랐다. 아소의 세계농업유산 등재는 그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그 과정을 묻는 질문에 여전히 못 다한 말이 많아 보였다.

▶농업의 가치를 엿보다= 그가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낸 것은 10여년 전이다. 이보다 전에 이탈리아에서 8년 간 요리를 배웠다.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 별로 요리의 색깔이 달라지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울림이 컸다. 그때의 경험은 지역에서 난 식재료에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산 재료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어느 지역이든 유통이 편하니까, 납품업자를 통해서도 구마모토산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다"고 그가 말했다.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일일이 돌아다니며 재료의 품질을 확인하고 거래했다. 현재 그의 레스토랑에서 사용되는 고기, 채소 등은 생산자 50여명과 직거래로 공급 받는다.

건강한 식재료의 중요성은 아내가 병에 걸리면서 더욱 크게 다가왔다. 암이었다. "수술을 한 뒤 가장 신경을 쓴 게 식이요법이었어요. 그런데 슈퍼마켓에서 사온 고기, 야채를 먹으면 왠지 모르게 다 토해냈죠. 지역에서 난 재료로 만든 음식은 다행히 잘 먹었습니다. 지역 농가들이 건강하고 질 좋은 농산물 만들어 내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그 가치를 잘 모르는지 의문이 생겼어요."

구마모토현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미야모토 켄신(40)씨. 그는 아소를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연구회를 구성하고 행정 당국의 참여도 이끌어 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농업유산에 눈 뜨다= 이러한 생각은 그의 요리를 바꿔 놓았다. "발밑에 있는 보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가 말했다. 세계농업유산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이맘때였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침체되는 지역 농업의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도전해 보자는 마음이 동했다.

행동은 재빨랐다. '아소를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시키고 싶다'는 내용을 담아 일본 유엔대학의 다케우치 교수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농업유산 전문가다.

"다케우치 교수에게 만나자는 답장이 왔습니다. 바로 동경으로 가서 조언을 구했죠. 민간 주도로 해보라고 격려해 주셨지만 시나 현, 정부의 힘을 받지 않으면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행정 당국의 승인을 얻으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고, 구마모토현은 일본 내에서도 가난한 현에 속합니다. 민간 중심으로 하되 현이 참가하는 형식으로 하게 됐죠." 세계 유산 등재 절차가 보통 정부나 지자체 주도로 진행되는 점을 고려하면 한 개인이 중심에 선 것은 분명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세계농업유산추진연구회를 구성하고 세계농업유산 등재 절차를 밟아갔다. 이 과정에서 2000만엔(한화 약 1억8000만원) 정도의 사비를 들이기도 했다. 집집마다 다니며 농업인들을 만났고, 세계농업유산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갔다.

특히 아소의 대표적인 전통 농업 방식인 노야키(野燒)와 농업의 상관관계를 정리하는데 집중했다. '들불 놓기'를 뜻하는 노야키는 들판에 불을 지펴 잡초를 태우고, 다음 해의 비료로 삼는 일이다. 아소의 광활한 초원을 관리하기 위한 방법인데, 사람들은 이를 통해 농업을 지속하며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왔다.

2013년 4월 로마에서 열린 세계농업유산 심포지엄은 그동안 다듬고 정리한 아소의 농업유산을 세계적으로 선보이는 자리가 됐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5월 아소는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 특히 민간이 주도하고 지방 정부의 참여를 이끌어낸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달라지는 농업유산 아소= 세계농업유산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농업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아소지역의 낙농업단체가 세계농업유산 브랜드를 내건 우유를 만들었다. 일반 우유보다 가격이 비쌌지만 한 달에 5만개가 팔렸다. 판매금의 일부는 세계농업유산 기금으로 적립되고 있다.

구마모토현 지역 은행인 히고은행은 한시적으로 세계농업유산 예금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은행에서 이 상품의 계좌를 개설해 예금하면 금리가 기금으로 기부되는 형태다. 지난해 3개월 동안 1만 명 이상이 가입했고, 총 예금액이 3000억원에 달했다. 그는 "아소는 물이 맑고, 청정한 곳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단순히 아소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참여도 컸다"고 말했다. 이렇게 모인 기금은 아소의 초원을 유지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드는데 사용되고 있다.

올해부턴 농산물을 판매할 때도 세계농업유산 브랜드를 활용할 계획이다. 지역산 농산물, 축산물 등의 가치를 높여 농가의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이 과정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것은 주민들의 참여가 될 것"이라고 그가 강조했다.

"세계농업유산을 보유한 제주도 똑같이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농업 활동에 변화를 주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죠. 그런 만큼 앞으로 지역 농업을 이끌어 나갈 젊은 리더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농업 유산을 활용해 농촌에 활력을 줄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하도록 하는 거죠. 그것이 바로 농업유산의 성공 열쇠가 될 겁니다."

특별취재팀=강시영·강경민·김지은 기자

[구마모토현 아소는 어떤 곳?]

세계 최대 칼데라 위에 펼쳐진 초원
인위적 관리 시스템 속 다양한 동·식물 공존


아소(阿蘇)지역은 일본 구마모토현 북동부에 위치하며 7개 시·정·촌으로 구성돼 있다. 아소시를 중심으로 오구니, 미나미오구니, 우부야마, 니시하라, 미나미아소, 타카모리가 둘러싼 형태다.

세계 최대급의 칼데라를 자랑하는 아소산(1592m)은 이곳의 상징이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칼데라의 면적이 약 350㎢에 달하고, 지금도 흰 연기를 내뿜고 있는 나가다케를 비롯해 다양한 화산 지형이 펼쳐져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됐다.

세계 최대급 칼데라에 펼쳐진 초원에선 해마다 2~4월이 되면 들불놓기인 '노야키'를 볼 수 있다. 사진 속 아소 초원에는 잡초를 태우기 위해 불을 지폈던 흔적이 엿보인다.

칼데라 위에 펼쳐진 초원의 규모도 광대하다. 예부터 소와 말의 방목 장소로 이용됐는데, 사람들은 초원의 풀을 베어 내 가축의 사료나 초가 지붕의 재료로 쓰기도 했다. 봄을 맞는 2~4월 초원에선 '노야키'(들불 놓기)를 볼 수 있다. 연간 강수량이 3000㎜ 정도로 많은 비가 오지만 초원이 덤불이나 숲으로 변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들불 놓기-방목-풀 베기'로 이어지는 초원 관리시스템 안에서 농업을 지속하고 있다.

아소는 농업 활동에 알맞은 지역은 아니였다. 사계절 내내 기후가 냉랭한 데다 화산성 토양으로 인해 생산성이 낮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 풀을 먹은 소의 퇴비나 풀 자원을 활용한 거름으로 농업 활동에 적합하게 토양이 계량됐다. 평지에선 벼농사, 산간지역에선 채소 생산이 주를 이루고 축산업과 임업도 활발하다.

아소는 물이 맑기로도 유명하다. 용천수가 솟아오르는 수원지가 모두 4곳에 걸쳐 자리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시라카와 수원. 1분마다 60톤에 이르는 물이 샘솟는데, 투명도가 높고 맛이 부드러워 일본의 명수백선(名水百選)에 선정됐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2013년 5월 아소를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했다. 지난해 4월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된 제주밭담보다 1년 정도 앞섰다. 전통 농법을 통해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초원을 보전하기 위한 노력에 속도가 붙고 있다.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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