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어떤 공감대가 얼마나 귀중한 마을 자산이 되는 것인지 가장 명확하게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마을이다. 동백이라고 테마 속에는 신흥2리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설촌터라고 하는 곳이 엄연하게 존재하는 곳도 이 마을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수령이 300년 넘는 동백나무 숲이 가지는 의미는 마을의 시작에 대한 분명한 기록과 함께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숙종 32년(서기 1706년) 입도 시조 광산 김씨 12세 손 중의 한 분이신 김명환 님이 표선면 토산리에서 이 곳에 들어와 살면서 마을의 역사는 시작됐다. 그 후, 여러 성씨들이 들어와 살면서 100여 호의 마을로 번창했다는 사실. 마을 형성기에 조상들이 심기 시작한 수령 300년이 넘는 동백나무들을 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 동백나무들의 연륜이 마을의 정신적 공감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풍수사상에 입각해 전해 내려오는 신흥2리의 위상은 이러하다. 탐라에는 6대 양택혈이 있다고 하는데 그중 제2혈이 이곳이라고 한다. 평온한 마을의 형세가 안고 흐르는 냇가가 있어서 일명 '여호내'라고 하는 호천(狐川)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예온천(禮溫川)으로 불리며 양반들이 주로 살아왔다. 그래서 사람들의 성품이 온유하고 다툼을 멀리하는 문화가 마을의 정신적 유산으로 계승돼 오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김경범 이장
남원읍의 동쪽 끝 아랫마을 신흥1리와 함께 송천을 경계로 표선면 토산리와 마주 보고 있다. 북쪽에 가시리, 서쪽에는 의귀리와 수망리가 이웃해 있다. 마을 가장 위쪽은 물영아리오름 동쪽 지경에서 시작해 해비치골프장으로 내려와 여절악과 화훼생산유통단지에 이르는 영역을 거쳐 안온한 느낌의 정주공간까지 이르게 된다.
대다수의 주민들이 감귤농사를 짓지만 가을이면 할머니들이 동백열매를 주우러 다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마을 공동사업으로 운영하는 동백방앗간에서 동백기름을 짜고, 이를 활용한 비누를 만들기도 한다. 그 동백방앗간에서 생산된 동백기름 덕에 마을공동체 활성화는 물론 농외소득까지 올리고 있다. 동백마을의 유명세에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음식, 비누, 공예 만들기 등 동백과 관련된 콘텐츠들을 가지고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테마 중심 마을발전 전략의 전국적 성공사례로 귀감이 된다. 그러한 평가는 식물자원을 마을공동체 문화의 정신적 일체감으로 승화시켰다는 세간의 인식에서 더욱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어찌 하루아침에 이뤄낸 성과겠는가? 동백고장보전연구회원들이 동백묘목을 직접 키워서 마을 주변에 심고 가꾸며, 성장한 동백나무에서 얻은 열매를 가을과 겨울에 수매하는 등 동백고장의 보전과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와 실천을 해온 누적의 시간들이 소중한 미래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경범 이장에게 신흥2리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주저 없이 간명하게 대답했다. "잘 모돠듭니다." 마을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는 분위기를 제주어로 힘줘 표현한 것이다. 마을 인구로는 그렇게 크다고 볼 수 없는 마을임에도 청년회와 부녀회 활동이 그 어떤 마을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왕성한 것은 마을공동체의 소중한 가치를 뼛속 깊이 인식하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도시에 나가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마을청년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에서 신흥2리의 희망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선대에서부터 내려온 전통이므로 이러한 토대 위에서 세대 간의 갈등 같은 것은 먼 나라 이야기 정도로 들린다는 것이다. 각 세대가 너무 잘 어울려 일하는 모습에서 어떤 가족과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공통관심사가 있다는 것은 마을이 하나 되는 촉매이자 성과의 열매가 된다는 사실을 신흥2리 주민들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협력 제안들이 외부에서 쏟아지는 이유도 이러한 마을 결속력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하고 있기에 마을공동체정신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경제적 자원으로 작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각예술가>
부지런한 봄 햇살<수채화 79cm×35cm>
마을 곳곳을 다니며 신흥2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장면을 찾다가 여기서 시선이 멈췄다. 초가집에서 슬레이트로 지붕개량을 한 소박한 집과 돌담. 그 앞에 감귤창고. 집보다 창고가 서너 배 더 크다. 부농의 삶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비효과다. 두 개의 건물이 오후의 봄햇살을 분산 배치시키며 빛의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경이롭거나, 우쭐대는 그 어떤 장면도 없다. 그냥 소소한 일상일 뿐이다. 그런데 평화가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선 그리며 생각하기로 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 마당을 가로질러서 들어온 태양광선이 오른쪽 연초록 잎사귀들을 강렬하게 비춘다. 농가주택 마당으로 배달된 봄이 보인다. 부지런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주소지에는 저런 햇살이 찾아오는 것이려니. 부농의 꿈을 향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온 불굴의 햇살을 그리려 하였다. 어떤 시련도 저 햇살의 그림자일 뿐이다. 농업을 상징하는 초록 잎사귀 색채를 더욱 눈부시게 하는 회화적 역할처럼.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이겨내며 조화롭게 살아온 소박한 농부의 집 마당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집을 리모델링하려는 모양이다. 비료포대에 뭔가 담아져 있는 모습이며 작업하는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자연스럽게 놓여있다. 참으로 정겨운 도전의 행복감이다. 새로워지려는 시도는 끊임없는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찬란한 봄햇살이 쏟아지고 반사되며 2차, 3차에 걸친 파생광선을 생성시키는 봄햇살 종합세트가 여기 신흥2리 동백마을에서 소박하게 빛난다.
여절악 정상에서<수채화 79cm×35cm>
이 섬에서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오름이다. 해발 209m 정도의 나지막한 높이. 북쪽 지대가 높아서 동쪽으로 난 길가에서는 조금 가파른 동산을 오르는 기분으로 10분 정도면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필자가 자주 이곳을 찾은 이유는 야릇한 환희를 느끼게 하는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한라산을 바라보는 기분.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한라산이 영산(靈山)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시각적 판단이 가능한 곳. 엉뚱하게도 파르테논 신전의 지붕 물매 각도와 흡사한 한라산 능선 각도다. 아테네인들의 시각적 관념을 차용해 판단하거니와 신전의 지붕은 평온한 신비감을 느낄 수 있어야 했으리라. 신을 건축물로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지붕의 물매 각도와 여기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실루엣은 일치에 가깝다. 내 마음속 신전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자주 오는 이곳을 그렸다. 한라산의 모습은 이 섬의 한 바퀴를 돌며 각기 다른 모습이나 유독 여절악 정상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이 주는 영산 한라의 메시지는 확률적 희소성 그 이상이다. 눈부신 봄 햇살 아래 휴게시설로 보이는 나무 정자가 무미건조해 보여서 그리는 과정에서 모던한 감각으로 단청을 했다. 풍경화 속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그린 것이다. 사실을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 열망인가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다. 멀리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 것은 가장 광범위한 지역을 조망할 수 있다는 객관적 증거다. 이 마을 최고의 시각 자산이라 여기며 그렸다.
■기사제보▷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