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바다로 해가 지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운 마을이다. 그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마을 이름과 결부 지어 생각하면 놀랍다. 해가 서쪽 바다 수평선에 있다는 것은 동쪽 방향을 비추는 것. 염전을 통해 수익을 찾던 역사를 지녔으니, 그 조상들에게 있어서 해에 대한 민감성은 높았을 것이다. 섬 제주의 서쪽 바닷가 마을의 입장에서는 그 해가 동쪽에 있는 마을을 비춰주는 것이 가장 득이 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동일리(東日里)라는 이름 속에 담겨져 있는 두 개의 태양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도 그러하다. '동녘 東'이라고 하는 글자는 나무에 걸린 해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형상화했다고 일컬어지지만 동일리에서는 현실적 위치에 따라 '해의 동쪽'-海東 첫 마을의 뜻으로 필자는 받아들였다. 그 시간대가 일몰에 가까운 공간적 상황이니 감각적 찬미를 한 것.
선 쪽 수평선으로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하며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섬에 있다는 사실을 만끽하는 것은 이방인에게는 더 깊은 인상을 준다. 제주의 서쪽 바닷가 마을들이 대부분 일몰이 아름답다고 자신하지만 동일리 바닷가는 독특한 조간대를 보유하고 있어서 더욱 신비하다. 이 조간대에 1790년경부터 소금밭을 만들어 천일염을 생산하고 제주섬 전역에 팔았다고 한다. 1920년대에는 염전사업이 매우 활발해 최고품질의 동일리 소금이 육지에까지 공급됐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 소금을 지금은 맛볼 수 없다는 것.
강은호 이장
동일1리는 남동방향으로 모슬봉, 북쪽의 가시오름과 함께 삼각지대를 이루고 있다. 마을 전체가 대부분 평지로 농작물 재배의 최적지이기에 조상 대대로 농업소출이 좋았다. 해안도로와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을 보유한 어업활동을 통해 소득을 올리는 전형적인 농어촌형태를 지니고 있다. 도시화된 모습으로 변모하는 하모리와 바로 인접해 있어서 도농복합형 마을로 보이기도 한다.
일과리와 함께 옛 이름이 '날외'다. 마을 어르신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다른 마을 영역까지 날외라는 지명으로 부르다가 나눠져서 독자적인 마을들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선사시대 지석묘 2기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면 이 지역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지녔다는 것. 바닷가 바위들은 낚시꾼들에게 좋은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어서 벵에돔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바닷물이 깨끗하고 어족자원 또한 풍부하다.
강은호 이장에게 동일1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간명하게 한마디로 "젊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색적이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가진 그 '젊음'의 실체는 마을공동체가 추구하는 조직적 마인드이기도 하다. 농어촌마을이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이어왔고 이어가게 될 본능적 의무감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마을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진취적인 마을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한 강력한 의지를 '젊은 마을' 동일1리에 담고 있으니 참으로 감동적이다.
올해도 12월 31일에 동일1리가 키워온 '해넘이 축제'가 성대하게 열린다. 독특한 해변경관 속에서 펼쳐지는 한 해의 마무리 축제를 위해 마을공동체 구성원들이 합심해 준비를 한다. 행정당국에서도 이러한 노력에 힘을 보태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축제의 성공은 마을주민들의 자발적 역량 확인이다. 발전적인 도전을 계속해 일몰축제의 대표단수로 일컬어질 때까지 행적 지원과 관심이 증폭돼야 한다는 것이다. 항상 주인공은 마을공동체가 되도록 해야 소박함이 주는 감동이 생성된다. 최고의 축제품질은 얼마나 큰 조직에서 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열정적인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낸 감동이냐에서 판가름 난다. 동일1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개척해 일궈낸 해넘이 축제가 연말의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그 상징성의 확장으로 사계절 아름다운 노을 속에서 힐링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필수 방문코스가 되도록 모두 함께 힘을 모아간다만 소금을 만들어주던 해가 황금을 만드는 해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시각예술가>
집과 집을 이어주는 햇살<수채화 79cm×35cm>
동쪽에서 서쪽에 있는 존재를 그린다. 그 찬란한 빛은 해다. 위치에 따라 의미를 달리하는 가장 큰 메시지. 지금 서쪽 바닷가에 가면 파도에 부서지는 윤슬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욕심을 접고 소박한 이웃들이 모여 사는 집들 속으로 걸어왔다. 대로변 인도에서 조금 지대가 낮은 집 풍경을 주목하게 된 것은 담장을 넘어서 파란 풀들 사이로 길게 뻗은 햇살이 너무 아름답고 의미가 깊어서다. 그늘과 햇살의 오묘한 하모니를 그리기에 더없이 좋은 확률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에 희열을 느꼈다. 이색적인 것은 마당 가운데 크게 자라서 겨울을 맞이한 마른 풀잎 무더기다. 녹색 속에 갈색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은 한반도에서 찾을 수 없는 섬 제주의 겨울이기에 그린 것이다. 저 마른 풀들 또한 바닥에 있는 초록과 연두색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시간의 변화를 주도하는 해가 둘 모두를 비추고 있기에 대비효과 또한 짜릿하다.
차들이 자주 다니는 대로변 인도라서 주거공간과 이격을 형성하는 돌담이 규칙적으로 흘러간다. 크고 작은 템포를 따라서 광선들이 미세한 변화를 연출하는 공간감이 경쾌하다. 단절된듯하지만 빛을 통해 하나의 시간 속에 머물게 하는 힘이 느껴진다. 멀리 높은 돌담과 가까이에 한 줄로 이어진 돌담 사이에 무대가 마련된 구성. 그늘이 생성시키는 공간감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밝은 페인트 색 벽이 그늘 속에서는 햇살의 밝기와 어떤 정도의 명도차이를 만들게 되는지 확인.
불턱동산의 의미<수채화 79cm×35cm>
바닷가 암반지대에 살짝 높은 저곳을 누가 동산이라고 여기랴마는 동일1리 주민들은 동산이라 부른다. 밀물이 크게 밀려오는 물때에는 섬으로 느껴지는 저곳을 동산으로 부르는 이유를 묻지 아니하고 그린 것이다.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나가기 위한 장소요, 언 몸을 녹이려 불을 피우던 장소의 뜻을 보유하고 있다. 검은 바위로 둘러쳐진 저곳에 겨울이 왔다는 것은 마른 풀잎 빛깔들이 서쪽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며 보여주고 있다. 나무들의 키는 작다. 흙이 모자라기도 하겠거니와 뿌리를 내릴 곳이 암반뿐이니 생존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불굴의 의지를 찬양하고 싶어서 그렸다. 역경에 처해 좌절이 손짓할 때, 찾아와 저 동산에 올라 나무들을 어루만지며 처한 환경을 탓하지 않는 자세를 정신적으로 수혈하고 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리는 동안 떠나지 아니했다. 들어와 있는 바닷물 위에 바위동산. 저 멀리 수평선의 품속에 있는 듯하다.
용암이 바닷가까지 흘러와 굳은 검은 현무암 무더기가 그냥 쉽게 표현해 '검다'고 하겠지만 그 색은 결코 검기만 한 색이 아니다. 태양광선과 만나면서 시시각각 참으로 미묘하게 색채를 달리하는 마법을 부린다. 진지하게 그 명암의 굴곡들을 하나하나 연결하며 찾아 나섰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염분과 바람에 풍화돼 오늘의 모습일까? 진정 처음에는 동산이었다가 세월이 조각을 해 저 모습으로 창조된 것은 아닌지 그리는 내내 궁금했다. 다시 만년이 흘러도 '동산'이라 부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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