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은 핍박과 침탈로 얼룩진 설움과 회한의 섬 제주도를 일약 환금(換金)작물의 섬으로 변모시켰다. 귤 빛깔이 금색이라 해서 황금(黃金)작물이라고도 했다. 도 전역으로 확대 재배되면서부터는 아이들 학비를 대주는 '대학나무'로 불렸다.
이러한 감귤이 원희룡 도정 1년을 맞아 또다시 제주사회의 첨예한 이슈로 떠올랐다. 도는 지난 4일 비상품 감귤을 가공용으로 수매할 때 지원하는 도비 보조금(㎏당 50원)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감귤 생산 및 유통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도의회와 생산자 단체, 농업인 단체, 유통인 단체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2010년부터 가공용 감귤 수매가에 덤으로 얹혀주던 보조금이 떨어져 나가니 야단이 아닐 수 없다. 표밭에 마음이 가 있는 도의원들은 도의원대로 감귤표심 때문에, 생산농가나 상인은 그들 나름대로 정치권으로부터의 지원 고리가 끊길까봐 들고 일어서는 분위기다.
감귤이 정치작물화한 것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3년 출범한 관선 마지막 도정은 "감귤은 생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며 전임 도정의 정책인 감귤가공공장 설립을 백지화했다. 이어 관선 마지막 도정을 승계한 제1기(1995년~) 민선도정은 감귤생산 조정제를 통해 비상품용 감귤 산지폐기를 시행했다. 그러나 제2기(1998년~)와 제3기 전반(2002~2004년) 민선도정은 생과정책을 폐기하고 가공정책으로 전환했다. 기존에 계획했던 감귤가공공장에다 제2가공공장까지 세웠다. 선거 때마다 감귤을 땅 속에 파묻었다는 의혹을 선거 이슈로 내세우며 집권했기 때문이다.
제3기 후반(2004년~)과 제4기(2006년~) 민선도정에서는 해거리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연인원 3만명(2007년)이 넘는 기관·단체 직원들까지 애꿎게 간벌과 열매솎기 봉사에 나섰다. 급기야 제5기(2010년~) 민선도정은 가공용 감귤 수매가를 ㎏당 80원에서 110원으로 올린 데다 보조금까지 지급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정치작물의 위력이다.
감귤 생산구조 조정을 위한 농가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루과이 라운드와 WTO체제의 출범, 한·칠레무역협정 협상 시작을 계기로 폐원과 간벌, 가지치기와 감귤꽃따기, 열매솎기 등의 작업으로 농가의 등줄기에 땀이 마를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동력이 떨어졌다. 대학나무로 진학시킨 자식은 돌아오지 않고 농촌은 고령화됐다. 감귤꽃따기는 사라진 지 오래고 전정 기술자는 일당 18만원을 주어도 얻기 힘들다. 일손돕기에 의존하던 열매솎기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다른 지방 감귤밭 소유주는 관리인에 맡겨 농사를 짓는다. 제 품질의 감귤을 기대하는 게 잘못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표심에 눈이 어두운 감귤정책은 폐기해야 한다. 농가의 자생력을 높여야 한다. 후계자를 양성하고, 불량 감귤원을 폐원하고, 품종을 갱신하고, 불량과를 없애고, 수확량을 정확히 예측하고, 일손을 공급하는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고, 농가의 감귤처리 의타심을 일축하고, 농가 스스로 감귤밭에서 보람을 찾게 해야 한다. 이것이 환금작물로 돌아가는 길이다. 제6기(2014년~) 원 도정 감귤정책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독농가 고경휴(81) 옹은 젊어서부터 "비 오는 날은 쉬고, 공무원 출근하듯 감귤밭에 출근해보라. 해거리나 파치가 나올 이유가 있나"라고 일갈한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김성호 전 언론인·행정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