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찬(相贊)'의 악습과 '갑질'의 공무원

'상찬(相贊)'의 악습과 '갑질'의 공무원
[한라칼럼] 김동현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
  • 입력 : 2015. 08.18(화) 00:00
  •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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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회의 '탐라직방설'에는 상찬계(相贊契)를 설명하며 제주의 아전을 세 부류로 나누고 있다. 진무리(鎭撫吏), 향리(鄕吏), 가리(假吏)가 그것이다. 백성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뭉친 이들의 폐해는 컸다. 이강회는 이를 "백성들의 살가죽을 남김없이 벗기고, 백성들의 살을 여지없이 도려내며, 백성들의 피를 남김없이 빨아 먹는다"고 썼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공공의 이익보다 사익을 우선하는 공무원의 학정(虐政)을 고발한 것이다.

'탐라직방설'은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잘못을 눈감아주는 관행,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침묵의 카르텔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폐해를 경고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이강회의 지적처럼 상찬(相贊)의 관행은 사라졌는가. 한때 제주 사회에 만연했던 '조배죽'이라는 정체불명의 건배사는 상찬(相贊)의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주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권력은 바뀌었지만 권력의 그늘에서 생존하는 '아전'들은 여전하다.

얼마 전 감사위원회의 해양수산연구원의 감사 결과 드러난 비리는 단지 개인의 일탈에 불과한 것인가. 감사위원회의 감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전 해양수산 국장은 되레 방송에 나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큰 소리를 쳤다. 인사철을 맞은 마타도어라고도 했다.

800명에 불과한 아전들이 서로 무리를 지어 뇌물을 바치고 이권에 개입했던 것이 불과 200년 전의 일이다. 민주사회가 되었다고는 하나 위임받은 권한을 제멋대로 행사하는 '공무원'은 아직도 여전하다. 이런 공무원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뿌리 깊은 '상찬(相贊)'의 문화다. 잘못에 눈감으며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감싸 안는 온정주의가 문제다. 감사위원회의 감사결과를 무마하기 위해 감사위원장과 감사위원들과 접촉했던 고위 공무원의 사례는 '상찬(相贊)'의 악습이 공직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이 뿐만이 아니다. 행정의 잘못에는 관대하며 '민간'에는 '갑질'을 행사하는 공무원들도 있다. 15일 목관아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사진작가 권철의 사진전을 둘러싼 논란은 공무원 '갑질'의 전형을 보여준다. 권철은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통해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했다. 하지만 '목관아지에 야스쿠니는 안된다'는 편견과 몰상식 때문에 사진전은 관덕정 광장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목관아지 사진 반입을 막아 선 제주시청 공무원의 모습은 마치 권철의 사진 속 야스쿠니 취재를 막는 경비원의 모습과 묘하게도 일치했다. '야스쿠니만은 안된다'는 일본 식민주의자의 '갑질'과 '목관아지에 야스쿠니와 욱일기는 안된다'는 시청 공무원의 '갑질'. 그 사이에는 미완의 식민 청산이, 넘기지 못한 가시처럼 우리 사회에 남아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전시회에서 만난 권철 작가에게서 이 날의 해프닝에 대해서 짤막하게 들을 수 있었다. 사단은 제민일보 문화부 기자의 편견에서 비롯되고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가 화학 작용해 발생했다. 어쩌면 이번 일은 언론과 공직사회의 '상찬(相贊)' 관행으로 마비되어가는 제주사회를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언제까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익명의 비판 뒤에 숨고 '상찬(相贊)'의 악습 속에 살 것인가. <김동현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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