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마지막 절기인 상강이 엊그제 지났다. 계절이라는 시간과 들녘의 공간은 자연스럽게 변한다. 푸른색으로 온 산야를 뒤덮을 것 같았던 환삼덩굴도 꽃가루를 뿜어내느라 그 힘이 다 빠졌고, 개삼동도 보라색 열매를 맺었다. 송장풀과 배초향, 도둑놈의 지팡이라는 고삼, 명아주와 같은 여름풀들은 훗날을 기약하며 시들어가고 있다. 그 자리엔 쑥부쟁이와 산국, 짙은 향기로 꿀벌을 불러들이는 꽃향유가 꽃을 피워 가을을 찬미하고 있다. 감귤나무에도 노란 감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산과 들은 점점 부드럽다. 같은 공간에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시간의 흐름에는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한다. 가을을 그렇게 맞이하면서도 계절을 가리지 않고 꽃을 피우며 하얀 꽃씨를 바람에 날려 보내는 서양등골나무와 주홍서나물 같은 외래종 풀들에는 속수무책이다. 하기야 이들 역시 같은 햇빛과 별과 달, 바람과 비를 공유하고 있을 터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니다.
농부는 들녘을 바라보며 계절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약초농사에 종사하게 된 동기에 대해 한번 생각해본다. 농사를 통해 원시적으로 재배라는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며 정신적 삶을 추구하겠다는 욕심과 극히 자본주의적이고 야만적이지만 약초농사를 통해 궁극적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경제적 욕망을 갖고 출발했다. 큰 욕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이 모두를 사랑한다.
그래서 땅을 파고, 잡초를 뽑기도 하고 때로는 모든 풀이 약초라는 생각을 하며 그들과 함께 삶을 거칠게 움켜잡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농사꾼은 산과 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자연의 일부라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에 공감한다.
자연에 가까운 사람들이 예전부터 실제 경험을 통해서 본능적으로 이미 아는 사실이 많다. 이들이 알고 있는 경험적 지식을 상품으로 만들면 경제적 가치가 있을 것이다. 농가의 재배와 가공과 제품생산 그리고 판매로 이어지는 것이 6차 산업이요, 이 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가 아닌가.
그러나 현실을 보자. 농가가 직접 연구개발해서 상품으로 판매하면서 모방품을 방지하기 위한 특허까지 획득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이 엄청나게 필요해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관련연구기관의 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지만 투자유치라는 이유로 도로를 개발하고 땅을 파헤치며 제주산야를 멍들게 하는 사업보다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린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농가와 함께 돈이 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농부들은 노동이라는 육체적 고통은 정신적 삶을 어느 정도 충족하고 있다고 여기며 생활한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오면 이러한 이유로 약초농사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기 일쑤다. 물론 감귤이나 양배추와 같은 기존의 농업도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제주에 자생하고 있거나 이미 알려진 약초를 미래산업으로 키워볼 만하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2000여 종이 넘는 식물이 분포하고 이 가운데 800종이 넘는 식물을 약초로 활용할 수 있다는 김한주 박사의 연구논문을 빌리지 않더라도 약초산업은 제주를 풍요롭고 건강한 섬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미래는 건강과 아름답게 오래 사는 것이기 때문에 불로장생의 섬으로 가는 제주미래를 농부가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송창우 약초농사꾼, 전 제주MBC 보도국장>